기억의 골목

2화

2화 – 마루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다


가끔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으면

나는 마루 위에 조심스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와지붕 끝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릴 적 나의 창문이자, 가장 가까운 우주였다.


몸은 작았지만 생각은 늘 자꾸 멀리 갔다.

배꼽 위에 양손을 올리고 목침을 베고 누우면,

하늘 저편으로 시선이 흐르듯 멀어졌다.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구름 한 조각이 손바닥에 내려앉을 것 같았다.


마루에 누운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벼들의 물결이었다.

넓고 고운 황금빛 들판이

바람 따라 살랑이고, 춤추고, 웃었다.

바람은 어느새 내 볼을 살짝 스치고

귀 뒤로 빠져나가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근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게 평화라는 거구나.”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면

그 하늘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주황빛, 분홍빛, 그리고 아주 붉은색까지

하늘은 불타듯 하루를 마무리했다.

붉게 번지는 구름 사이로

비행기 소리가 가끔 들리면

나는 “서울 가는 거겠지” 하고 상상했다.

서울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그때 내게 서울은 아주 먼 별 같은 곳이었다.


마루에 누워 있으면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이 홰를 치고,

우물가 물 긷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어쩌면 엄마가 돌아오시는 걸지도 몰라

귀를 쫑긋 세우며 소리에 집중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졸음이 밀려오면

하늘 아래 나는 아주 작은 한 점이 되어 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

지금은 안다.

누구의 방해도 없고,

시간도 조용히 흘러가며,

하늘과 내가 눈을 맞추던 그 오후의 마루.


그 마루 위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도 했다.

걱정도, 꿈도, 심심함도

하늘 아래에선 모두 잠잠해졌다.


세상은 마루 끝에서 시작되었고,

하늘은 그 세상의 천장 같았다.

그 아래 나는 나만의 작은 우주를 품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런 마루가 그립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하늘과 마주 보는 조용한 오후,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작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 시절의 마루는 나의 평화였고,

그 평화 속에서 나는

세상을 향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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