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다채로운 하굣길, 수다의 시간
4학년 담임선생님은
그대로 우리 5학년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익숙한 목소리와 툭툭 던지는 유머,
매주 월요일마다 짝을 바꾸던 방식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용현이는
선생님의 든든한 조수가 되었다.
이젠 진짜 반장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힘 있고, 눈치 빠르고, 말도 야무졌다.
아이들은 그런 용현이를 조금씩 따랐고
나도 한 발 뒤에서 그 흐름을 지켜봤다.
5학년이 되자
나는 더 밝아지고
수다도 곧잘 떨었다.
웬만한 이야기엔 낄 수 있었고
친한 친구도 점점 늘어났다.
학교 근처엔 새로운 마을이 생겨났다.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2 지구, 3 지구라는 이름의 마을이 하나둘 생겨났다.
거기엔 옥천에서 이주해 온 집들이
똑같은 모양, 같은 간격으로 줄지어 있었다.
낯설지만 신기한 동네.
처음 보는 성씨, 처음 듣는 말씨.
그리고 그곳에서 전학 온
새로운 친구들.
그중
나는 금은이 와 친해졌다.
작고 말간 얼굴에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눈빛이 또렷했다.
책을 좋아하고
조용히 남 얘기를 잘 들어주던 친구였다.
어쩌다 짝이 된 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서로의 마음이 닮아 있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되었다.
학교 갈 때는 따로 갔지만,
돌아오는 길엔
2 지구, 3 지구 아이들을 따라
하교를 했다.
집 방향이 조금 달라도
굳이 먼 길을 돌아서라도
함께 걷는 하굣길이
그렇게 좋았다.
5~6명 정도의 여자아이들.
다리 밑도 지나고,
물가도 지나고,
풀숲을 헤치며
한 시간 남짓을 걸었다.
누구는 아빠 이야기,
누구는 언니 이야기,
어젯밤에 있었던 TV 속 이야기,
그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농담까지.
하굣길은 그야말로
작은 세상이었다.
내 말에 박장대소해 주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나름 재밌는 아이인가 싶었고,
누군가의 속마음을 처음 듣게 되면
내가 소중한 친구가 된 듯 뿌듯했다.
비탈길을 오르다 힘들면
서로의 책가방을 잠깐씩 들어주었고
갑자기 비가 오면
누군가의 우산 아래 다닥다닥 붙어
비를 피하며 걷기도 했다.
산길 끝자락에서
하나둘 갈라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쉬움에 다시 인사했다.
“내일 보자!”
“금은아, 숙제 잊지 마!”
“선생님 말씀 기억해!”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며
그 하루의 끝을
나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친구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진하게, 오래도록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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