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에서의 결투

6화 산소에서의. 결투

산소에서의 결투


문희네 뒷산, 대리석 상이 있는 산소는

우리 반 아이들 누구나 좋아하는 장소였다.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다.

나만 그 동네를 부러워하고 좋아한 게 아니었다는 걸.


그날 점심시간.

뭔가 이상했다.

남자아이들끼리 쑥덕이는 분위기,

수업이 끝나기도 전부터 눈빛이 분주했다.


"오늘 산소에서 보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아이들 얼굴에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동철이와 상희가 붙는다고.

싸움이었다.

결투.

그 말만으로도 온몸이 소름 돋는 일이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큰 사건이자 큰 구경거리였다.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문희네 동네로 아이들이 달려갔다.

문희네 앞 골목을 지나

대리석 상이 있는 산소 잔디밭엔

이미 반 아이들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가을 햇살이 길게 늘어지고

잔디 위엔 싸움 구경하러 온 아이들 그림자가 겹겹이 드리웠다.


동철이와 상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권투 시합처럼 주먹을 주고받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둘은 갑자기 몸을 낮췄다.

손을 번쩍 들더니,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싸움이 시작됐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밀치고, 옷이 풀리고,

잔디 위는 금세 흙먼지로 뿌옇게 가려졌다.


그 순간,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야, 선생님 오신다!"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효과는 컸다.


아이들은 쏜살같이 흩어졌다.

싸움은 중단되었고,

동철이와 상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말없이 돌아섰다.


그날 저녁, 산소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잔디는 조금 헝클어졌고

대리석 상엔 누가 올려두었는지 모를

떡꼬치 봉지 하나가 나뒹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철이와 상희를 생각했다.

그들 사이의 무언가,

우리는 끝내 듣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감정을 풀어가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날,

아이들만의 세계가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깊은지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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