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11화 –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오래된 천조각
엄마는 늘 새벽을 먼저 열었다.
언니 도시락을 두 개나 싸고,
해뜨기 전 밭으로 나갈 채비를 하셨다.
해가 쨍하게 머리 위로 올라오는 정오쯤,
엄마는 겨우 마당에 앉아 한숨 돌렸다.
그 시간이 집안일로 쉬어가는 유일한 틈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엄마가 너무 많은 일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걸.
그래서 심부름이 힘들어도
웬만하면 “싫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당을 쓸고, 마루를 닦고,
가축들 밥 주는 일은 매일의 일상이었다.
특히 토끼는 내 몫이었다.
아빠가 손수 만든 토끼장에는
하얀 토끼가 두 마리 살았다.
처음엔 두 마리였던 토끼가
어느새 토끼장 열 칸을 꽉 채웠다.
그만큼, 나와 남동생은
매일 아침 풀을 베러 나가야 했다.
아직 이슬 맺힌 풀잎들을
낫으로 조심스레 베어 바구니에 담았다.
풀을 베는 일은 때로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 일이 제법 재미있어졌다.
손에 쥔 낫이 땅과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가능케 한 건,
엄마의 단단한 뒷모습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고단함을
한 번도 티 내지 않으셨다.
심지어 우리가 짜증을 부릴 때도
잠깐 눈을 감고 조용히 견디셨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토끼장, 풀냄새,
그리고 이른 새벽 도시락을 싸던 손길까지
모두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말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손으로, 등으로, 눈빛으로
가족을 감싸 안으셨던 분이었다.
지금도, 아주 가끔
마당 끝에 앉아 바람을 맞다 보면
엄마의 그 단단한 기운이
등 뒤에서 살며시 등을 다독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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