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세상

12화 토끼풀을 베는 아침


《12화 – 토끼풀 베는 아침》


오래된 천조각


아침 햇살보다 먼저 깨어나는 건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이었다.

그리고 그 이슬을 먼저 맞이하는 건, 우리 남매였다.


아빠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고

낫 하나씩 들고 마당을 나섰다.

풀을 베는 일은 언제부턴가

우리의 몫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낫질에 감각이 생겼다.

마치 손끝이 흙과 말을 나누는 것 같았다.


토끼들은 그 풀을 좋아했다.

처음 두 마리였던 토끼는

열 마리가 넘게 늘어났고,

토끼장도 열 칸으로 커졌다.


그만큼 풀도 많이 필요했다.

우리는 마을 밖 공터까지 나가

허리를 굽혀 풀을 베었다.


손끝에 닿는 풀잎의 감촉,

자르며 퍼지는 푸릇한 향,

그리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던

조금은 투덜대는 웃음들.


풀을 베는 그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햇살은 천천히 뺨을 쓰다듬고

바람은 나뭇잎 사이로 작은 노래를 불렀다.


그 아침들이 쌓여,

우리는 조금씩 자라났다.

낫을 다루는 법을,

풀의 결을,

자연의 호흡을 익히며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아무 말 없이 맡긴 일들을

우리가 스스로 해냈다는 작은 자부심.


그 시절 토끼풀을 베던 아침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푸르고 단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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