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노란 멜빵치마와. 재봉틀
《노란 멜빵치마와 재봉틀》
– 오래된 천조각
재봉틀은 언제나 아침보다 먼저 깨어났다.
따르르릉— 박음질이 이어지는 소리는 장독대 위로 피어오른 김과 섞여, 부엌부터 안방까지 조용히 흘러들었다.
미숙이는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왔다.
엄마는 몸배를 질끈 동여맨 채, 개량한복 소매를 걷고 노란 유채꽃무늬가 흩뿌려진 옷감을 다듬고 있었다. 멜빵치마였다.
“엄마, 이거 내 거야?”
“응. 너 소풍 가는 날 입을 옷.”
엄마는 실을 꿰며 짧게 대답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속엔 밤새 재단해 놓은 조각들과 새벽부터 이어진 바느질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미숙은 천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인형 허리에 둘러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진짜 예쁘다. 친구들이 다 부러워할 거야!”
“흠, 그런지는 모르겠고… 네가 잘 입어야지.”
엄마는 말없이 미숙의 머리를 쓸고, 다시 박음질을 이어갔다.
---
소풍날 아침, 마당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미숙은 노란 멜빵치마를 입고, 흰 블라우스에 손수건까지 차려입었다.
“야, 진짜 인형 같다!”
“너무 예뻐!”
동네 아주머니들이 엄마 옆에서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엄마는 말없이 웃으며 미숙의 가방을 메어주었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아이들 대부분은 기성복을 입고 있었다.
분홍 체크 원피스,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 바지에 운동화.
몇몇 아이들이 미숙의 옷을 힐끔거렸다.
“너… 옷 직접 만든 거야?”
“좀 촌스럽다…”
순간 미숙의 귀가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이려던 찰나, 전학 온 수진이가 다가왔다.
“이거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색이 너무 예쁘다. 진짜 잘 어울려.”
미숙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숙은 흙 묻은 치마를 툭툭 털며 말했다.
“엄마, 오늘 고마웠어요. 진짜 좋은 날이었어요.”
엄마는 짧게 한마디만 남겼다.
“잘 놀다 왔으면 됐다.”
그날 밤, 미숙은 몰래 마루에 나왔다.
재봉틀 위엔 남은 천조각과 반쯤 감긴 실타래,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로는 묻지도 자랑하지도 않았지만, 손끝으로 사랑을 전하던 사람.
밤새 실을 꿰고, 헌 옷을 기워 입히고, 아이가 아프면 물수건을 들고 곁에 앉아 있던 사람.
엄마의 사랑은 말보다 손에 담겨 있었고,
그 사랑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남아 있다.
미숙은 그날 입은 노란 멜빵치마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조용히 등을 다독이면
그 시절 재봉틀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또르르— 들리는 것 같다.
---
#엄마의 손 #노란 멜빵치마 #재봉틀소리 #소풍날의 기억 #오래된 천조각 #단편에세이
글이 좋았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다음 편에서도 따뜻한 천조각 같은 기억을 꿰매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