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골목을 걷다

19화

어린 시절의 거리감, 용현이


4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반의 반장은 용현이었다.

그 아이는 묘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용현이네 집은 우리 밭과 이웃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현이네 마당을 둘러싸듯, 우리 집 밭이 펼쳐져 있었고,

엄마와 아빠가 그 밭에서 일을 하시는 동안

우리는 늘 용현이네 마당 근처에서 놀곤 했다.


나와 남동생 둘, 그리고 용현이네 두 동생들.

그렇게 여럿이 함께 뒤섞여

마당과 밭 사이를 오가며 하루 종일 놀았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용현이라는 아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늘 어려운 존재로 느꼈다.


그 애는 나보다 한 살 많았고,

목소리는 또래보다 낮았으며,

놀이터에서도 조용히 중심을 잡는 아이였다.

그 조용한 무게감이

어린 나에겐 커다란 울타리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용현이의 동생은 내 또래였다.

같은 나이, 비슷한 키, 비슷한 장난기.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밭고랑 옆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용현이네 마당 장독대 뒤에 숨어 깔깔 웃기도 했다.


“거기 있지?”

누군가 소리치면 우린 장독 사이로 도망쳤고,

그때마다 나무를 박차고 도망가는 발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용현이는 가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놀기도 했지만, 쉽게 어울리진 않았다.

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같은 반이 되고,

그가 반장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생각했다.

아, 나는 이 아이를 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여전히,

그 애는 조금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사실, 그건 용현이의 탓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위축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거리를 두며

마당과 밭 사이에서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거리감이

우리를 더 조심스럽게 기억하게 만든 것 같다.


그날, 반장이 된 용현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옛날을 떠올렸다.

밭에서 불어오던 흙냄새,

아이들 웃음소리,

그리고 장독대 뒤의 햇살.


그 속에 늘 조용히 서 있던

한 살 많은 용현이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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