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14화

영미네 궁중떡볶이


금은 이는 전학 온 친구다.

어느 날 갑자기 2 지구에 이사 온 뒤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들어왔고

딸만 일곱인 그 집에서,

나는 부드럽고 조용한 금은이의 세계를 처음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같은 2 지구에 사는 영미는

왜 전학을 안 왔지?

우리는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고

영미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한 번도 낯설지 않았던 친구였다.


하지만

내가 영미를 다르게 바라본 건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영미의 말 한마디,

이야기 하나가

내겐 귀감이 되고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영미는 말이 참 또렷했다.

속 깊은 말투,

조용한 카리스마.

그리고 어딘가 단단한 사람이었다.

나는 속으로

‘배울 게 많은 친구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영미는 가끔

우리를 정식으로 초대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와.

엄마가 오늘 궁중떡볶이 해준다!”

그 말은 마치

고급 레스토랑 초대장처럼

내게는 설레는 말이었다.


영미네 집에 처음 놀러 갔던 날,

나는 그 집의 정갈한 분위기에

먼저 놀랐다.


방은 조용했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냄새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다.

가늘게 썬 소고기가

달짝지근한 양념과 함께 볶아지고 있었고

양념이 잘 배인 떡이 그 안에서 말캉하게 익고 있었다.


그게 내가 처음 맛본 궁중떡볶이였다.


매운 떡볶이에 익숙했던 내 입엔

그 부드럽고 달큼한 맛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감탄이 나왔다.

“이런 떡볶이도 있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영미 엄마는 조용히 웃으시며

우릴 잘 챙겨주셨다.

음식을 먹으며

우린 각자 가족 이야기며

학교 이야기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영미 엄마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떡볶이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집의 따뜻한 분위기,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던 영미의 태도,

그리고 우리를 진심으로 맞이해 준

그 마음이

내게는 어른스러운 감동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 떡볶이 이야기를 했다.

“소고기 넣고 간장으로 만든 떡볶이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궁중떡볶이지.” 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그런 떡볶이를 만들 줄 알아야지.”


어쩌면

그날 나는

음식보다 더 큰 무언가를 배운 것 같다.

친구를 초대하는 마음,

한마디에도 품격이 있는 태도,

그리고 정성을 담은 음식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영미의 세계는

조용했지만 강했다.

나는 그 속에서

작은 꿈 하나를 꾼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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