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겨울도 아닌데, 하얀 동그라미들
하굣길 과수원 길은 여느 날처럼 평범했다.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
아이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늘이 묘하게 어두워졌다.
햇살이 금세 사라지고,
검은 구름이 마을을 뒤덮더니
차가운 바람이 한 줄기 스쳐갔다.
"야, 왜 이래? 비 오려나 봐!"
누군가가 외쳤고,
곧이어 톡, 톡, 톡—
작고 단단한 무언가가
우리가 걷는 흙길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꽃잎인가 싶었다.
어떤 아이는 "솜사탕 같다"고도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하얗고 동그란 알갱이들이었다.
"우와, 눈이야? 이건 뭐야!"
책가방으로 머리를 감싸고
우리는 보이는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우르르 쏟아지는 흰 것들.
둥글고, 작고, 몽글몽글한 그 정체는
너무 갑작스러워 신기하기만 했다.
손바닥에 받아보니
살짝 딱딱하고 차가웠다.
"이거 눈 아니야. 얼음이야!"
누군가 말하자,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우박이라는 걸 알았다.
겨울도 아닌 4월의 어느 날,
우박은 그렇게 마치 놀러 온 손님처럼
갑자기 마을을 방문했다.
짧고 굵은 방문.
아이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우박을 쫓아다녔다.
누군가는 손에 모아 보석처럼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튕겨 나오는 우박알을 발로 톡톡 차며
하하 호호 웃었다.
“이걸로 팥빙수 만들면 되겠다!”
장난기 가득한 소리에 모두가 깔깔 웃었다.
하늘은 다시 맑아졌고
금세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우박은 바닥에서 사르르 녹았고
짧은 소동은 마치 꿈처럼 사라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오늘 하늘에서 이상한 눈이 내렸어.
딱딱한 눈! 얼음 같았어.”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거 우박이야.
갑자기 그런 날도 있지.
봄에도 여름에도 내려.
놀라긴 했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근데 재미있었어. 다들 신났어.”
그날의 뜻밖의 우박 소나기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조용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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