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붉은 하늘, 벼 물든 들판, 그리고 마루 끝
가끔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을 때,
나는 조용히 마루에 눕는다.
반듯하게 등을 대고, 마루 끝에 놓인 목침에 머리를 얹는다.
그 위로 하늘이 펼쳐진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내 숨소리보다 더 느리게 구름이 흐른다.
눈동자만 옮겨 하늘 저편을 바라보면
멀리 노랗게 물든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다.
들녘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바람이 불면 벼 이삭들이 들썩이며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 출렁임이 내 가슴에도 스며든다.
마루에 누운 채 한참을 그렇게 있다 보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하늘의 색이 변한다.
푸르던 하늘이 점점 노을로 물들어 간다.
먼저 분홍빛이 감돌다가,
이내 진한 주홍빛으로 번지고
마침내 눈부신 붉은빛이 하늘을 채운다.
그 붉은빛은
너무 뜨거워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하고,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절절하다.
세상에 그렇게 붉은 하늘이 있다는 걸
처음 본 것처럼 가슴이 뛴다.
그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내가 누구인지 잊는다.
아이도, 누이도, 학생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 하늘 아래 놓인다.
마루 끝에 혼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큰 화면 같았다.
그 하늘에
하루의 모든 것이 지나간다.
내가 웃었던 순간도,
속상했던 일도,
괜히 울컥했던 기억도
모두 그 붉은 하늘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간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들판이 고요히 고개를 숙이고
나는 마음 한쪽에 따뜻한 노을을 담아
마루 끝에서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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