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10화

모내기 전날, 부엌에서 들판까지


모내기 전날,

엄마는 마치 잔칫날을 준비하듯 바쁘셨다.

부엌에선 일찍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엄마는 두건을 질끈 동여매신 채

칼을 쥐고 무언가를 다듬고 계셨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엄마의 말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미순아, 가게 가서 고추장하고 된장 좀 사 와.”

“그리고 오면서 계란도 한 줄.”


나는 헝클어진 머리로

동네 구멍가게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가끔은 빵을, 가끔은 막걸리를,

가끔은 깻잎을 부탁받고.

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 이 집 저 집을 뛰었다.

그게 싫지 않았다.

엄마가 오늘은 큰일을 준비하는구나,

온 동네가 함께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어린 나름의 들뜸이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면

엄마는 주방에 나를 앉혀놓고 새참을 담았다.

따끈한 고구마, 달큼한 콩자반,

조금 짭조름한 김치전과 호박부침,

그리고 큼지막한 주먹밥까지.

도시락통 대신 커다란 광목보자기에 싸서

아빠가 경운기를 끌고 오시기 전에

나는 몇 번이고 집 앞 논까지 날랐다.


멀리 먼 논일 땐

아빠가 새참을 싣고 가시지만

집 가까운 논에서는

며칠이고 우리가 오갔다.

밥그릇이며 수저며, 물까지 챙기며.


엄마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식사를 준비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 곁에서

어느새 작은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더운물을 길어왔다.

그 땀방울의 온도는

밥 냄새와 섞여 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논에선 웃음소리와 함께 막걸리 냄새가 풍겼다.

동네 어르신들은 논둑에 둘러앉아

해가 기울도록 막걸리를 나누며

“올해도 고맙소.” “고생 많았어요.”

덕담을 나누셨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발야구까지 하며

논둑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녔다.


햇살은 부드러워졌고

엄마는 논에서 입은 옷 그대로

밭 옆 고랑에 쭈그리고 앉아

마지막 고추에 물을 주셨다.


그날의 풍경은,

분주했지만 평화로웠고

고단했지만 웃음이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이

함께 논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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