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9화


미화, 웃음이 먼저 오는 친구


영미와 종분이, 그리고 미화.

셋은 이웃사촌처럼 가까운 집에 살았다.

영미와 종분이는 언니 같았다.

말수는 적지만 조용하고 또렷한 말투로

늘 옳고 그른 걸 구분할 줄 아는 그런 친구들.

그들 앞에서는 왠지 행동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반면, 미화는 달랐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는 아이.

어디선가 미화가 다가오면

먼저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웃음이 먼저 반응하는 친구.

그게 미화만이 가진 특별함이었다.


사실, 미화를 향한 감정은

금은이 와의 친함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우정이었다.

금은 이는 편안함이었고

미화는 끌림이었다.


우리가 둘이 되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꿈 이야기, 좋아하는 음식,

요즘 내가 왜 웃기는지,

미화는 말이 참 많은 친구였는데

신기하게도 지루하단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미화의 말에는 색깔이 있었다.


어릴 땐 몰랐지만,

이야기를 잘한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이 단단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저 흘려보내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담아서 꺼내는 말.


미화는 언니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

작지만 아늑한 집에 살았다.

피부가 하얗고

늘 야무진 손길로 교과서를 정리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어느 날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미화랑 있으면

내 생각도 자꾸 정리되는 것 같아.”


미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래.”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 말 하나가

참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땐 몰랐지만,

미화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친구였다.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었다.

어떤 친구가 속상한지,

누가 기분이 좋은지,

누가 오늘 웃지 않았는지.


나는 자주

미화에게 끌림을 느꼈다.

어느 날은 미화네 집에 가고 싶고,

어느 날은 미화가 우리 집에 와줬으면 좋겠고.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가 따뜻해지는 친구.


아이들의 세계는 복잡하지 않다.

그저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 발걸음이 자주 머무는 곳엔

분명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나에게 미화는

그 특별함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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