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8화

교실 창밖엔 모 심는 소리


그날은 아침부터 창밖이 분주했다.

논두렁엔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고

땅 밟는 소리, 웃음 섞인 외침, 경운기 소리,

그리고 “어이 허— 어허”

모내기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교실 안에 앉아 있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자꾸만 창밖으로 향했다.

선생님도 알고 계셨는지,

칠판에 한 문제를 남겨놓고는

살짝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지금 저기 논에선 모를 심고 계신 거야.

저런 풍경, 지금만 볼 수 있는 거란다.”


교실은 조용했지만

우리는 어쩐지 그 말에 숙연해졌다.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흙이

그렇게 누군가의 수고로움 위에 있다는 사실.

모가 자라야 쌀이 되고

그 쌀로 밥이 지어져

우리가 도시락을 열 수 있다는 것까지.


창밖의 어른들은 줄을 맞춰

허리를 숙이고 모를 심었다.

어른들의 허리는 꺾였지만

그 손끝은 반듯했다.

줄 맞춰 심긴 어린 모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마치 인사를 하듯 흔들렸다.


교실 안에서 난 미화와 눈을 마주쳤다.

우린 동시에 웃었다.

미화는 살짝 창문을 열더니

“논냄새 좋아…” 했다.

정말 그랬다.

흙냄새, 물 냄새,

이른 여름의 풀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점심시간, 나는 도시락을 꺼내며

엄마 생각을 했다.

혹시 우리 논에도 지금 엄마가 나가 계실까.

고무신을 질질 끌며 물을 따라 걷고 계시지 않을까.

아무 말 없이 일을 하시는 엄마의 등을

먼발치서 본 적이 떠올랐다.


친구들과의 웃음,

선생님의 이야기,

창밖에서 들려오는 모내기 소리.

그날은 모든 게 어쩐지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논두렁을 지나는 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줄 맞춘 모를 볼 때면

그 아래 잠든 수고와 정성이 떠올랐고

흙이 다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교실 창밖의 논은

그저 풍경이 아니었다.

우리가 자라고, 밥을 먹고, 웃으며 살 수 있게

누군가 꾸준히 다듬어준 마음의 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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