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비 내리는 들판에서
장마가 시작되면
시골 마을은 온통 초록으로 덮였다.
들판도 산도, 심지어 골목까지
모두가 비에 젖은 연둣빛으로 출렁였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마루 끝에 앉으면
빗소리가 마치 이불처럼
포근하게 나를 덮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비가 내리는 소리만 들렸다.
빗방울이 처마를 타고 떨어지다
텃밭의 호박잎 위에 '툭' 하고 부딪히면
작은 연못처럼 반짝이곤 했다.
“오늘도 학교 가야 할까?”
그 질문은 매번 입으로 맴돌지만
결국 우리는 고무신을 신고
빗길을 터벅터벅 걸어 학교에 갔다.
학교 가는 길은
개울을 건너고
과수원을 지나야 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개울이 불어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작은 모험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그랬다.
장대비가 퍼붓고
바람까지 불어
우산이 뒤집힌 아이들도 있었지만
우리의 하굣길은 여전히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논두렁엔 물이 넘쳐흘렀고
모는 비에 젖은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잠깐 멈춰 서서
논을 바라보았다.
하늘빛이 잔물결에 비쳤고
구름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떠 있었다.
문득,
그 빗속을 함께 걷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서로 우산을 기울여주고
신발 속 물을 툭툭 털며 걷는 아이들.
우리의 웃음소리가
빗소리 사이를 헤집고 흘러갔다.
그 순간은 너무나 평범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들판을 둘러싼 안개가 걷히고
빗소리가 점점 잦아들 무렵,
어디선가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잠하던 마을이
조금씩 다시 깨어나는 소리 같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미나리 무침을 해주셨다.
빗속에서 캐 온 거라며
향이 유난히 짙었다.
반찬 하나에도
계절이 스며 있고
마을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 날들을 잊지 말자고.
이 비, 이 들판,
함께 웃던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조용히 가슴에 번지던
따뜻한 느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