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7화 전쟁놀이와 자전거 불빛

7화. 전쟁놀이와 자전거 불빛

종필이네 동네엔 내 또래 아이들이 참 많았다.

학교를 둘러싼 여러 마을 아이들이 저마다 편을 먹고, 야산과 운동장을 오가며 총싸움을 벌였다.

각자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고, 한쪽은 머리띠를, 다른 한쪽은 팔에 완장을 차고 온 산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그 싸움은 마치 진짜 전쟁처럼 치열하고,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모른다.


우리는 자주 티브이에서 보던 6·25 전쟁 장면을 흉내 냈다.

"빵!" 하고 먼저 소리쳐 상대의 이름을 부르면 이기는 놀이.

죽은 사람은 1~2분 뒤에 다시 살아나는 규칙이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도 아까워 몰래 기어 나오는 아이도 있었다.

서로 들키지 않으려 짝을 지어 풀숲에 숨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 바위 뒤에 엎드린 채 숨죽여 기다리기도 했다.

누가 먼저 외치느냐, 누가 늦게까지 들키지 않고 남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그날도 나는 완전히 전쟁놀이에 빠져,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놀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뚝 떨어졌고, 산길은 온통 검은빛에 잠겨 있었다.

집에선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고,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으러 어둠 속으로 나서셨다.


결국 뒤늦게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마당 앞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한 손엔 손전등, 다른 손엔 자전거 핸들.

불빛 속에 비친 아빠의 얼굴은 무겁고 지쳐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문 채 조용히 아빠 뒤를 따라 걸었다.

자전거 앞바퀴에 매달린 손전등 불빛이 덜컥거리는 흙길을 따라 앞서갔고, 그 불빛 속에 아빠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말없이 걷는 길이 그렇게 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 들어서자 아빠는 벗은 신발도 들지 못한 내 등을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오랬지. 이놈의 전쟁놀이가 뭐라고… 다 큰 애가 정신이 빠져가지고…"

엄마는 마루에 앉아 걱정으로 타버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이불속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아빠의 발자국 소리, 자전거 페달 소리, 어둠 속을 비추던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

그 속에 담긴 걱정과 사랑이 내 마음 한구석을 툭, 하고 건드렸다.


전쟁놀이는 끝났지만, 내 마음엔 그날 밤의 자전거 불빛이 오래도록 남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빠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그 불빛이 부끄럽고 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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