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16화. 뒤뜰 작은방나민의. 이야기방

16화. 뒤뜰 작은 방, 나만의 이야기방

늦은 봄,

뒤뜰 옆에 문과 마루가 딸린 작은 방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

나만의 책 읽는 장소였다.


앞마당은 늘 분주했다.

우리 집 식구들뿐 아니라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도

화분을 들여다보거나 물을 한잔 얻으러 들어왔다.

그래서 앞마당은 언제나 열린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뒤뜰은 달랐다.


앵두나무, 감나무, 배나무,

그리고 오디와 호두나무까지

줄지어 선 나무들이 담장 안에 다정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방 하나가 숨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도 없나 보다” 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 작은 방은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내 방이었다.



---


그 방 안에 들어가

나는 자세를 바꾸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엎드려 읽다가,

모로 누워 읽다가,

햇살이 비껴 들면 마루턱에 기대기도 했다.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안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상이

조용히 피어났다.


어느 순간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왔다.


그럼 나는 노트를 꺼내

책의 한 문장을 따라 써보았다.

문장의 리듬을 익히고 싶었고,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썼는지를 따라 해보고 싶었다.


책을 그대로 베껴보기도 하고,

거기서 등장인물을 바꿔

내 식의 이야기를 이어 써보기도 했다.


어쩔 땐

같은 장면을

다른 결말로 바꾸기도 했다.


마치 내가 진짜 작가라도 된 것처럼

말끝을 다듬고,

등장인물의 표정을 상상하며

그 작은 종이 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


글을 쓴다는 건

어린 내게는 놀이이자

기도 같은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그건

조용하고도 단단한 기쁨이었다.



---


오디가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뒤뜰에는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햇살은 담장을 넘어

나무 그림자를 내 책 위로 데려왔다.


나는 여전히 자세를 바꾸어가며

상상 속 주인공을 따라 걷고,

그 뒤를 따라

내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 조용한 시간들이

내 마음 어딘가에

소리 없이 씨앗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 방에 앉아 있던

어린 나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게

‘이야기’를 쓰는 아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4부 세상과 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