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연탄불 위에서 자란 아이들
17화. 연탄불 위에서 자란 아이들
그 무렵,
우리 집 부엌은 조용히 달라지고 있었다.
기억 속 부엌엔
늘 두 개의 가마솥이 있었다.
큰 가마솥과 작은 가마솥.
그중
큰 가마솥 하나가 있던 자리에
어느 날, 연탄이 들어왔다.
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짓던 손으로
이제 연탄불 위에 음식을 올렸다.
그 변화는
우리 가족의 식탁 풍경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연탄을 쌓아둘 저장고가 생기고
아빠는 매일 연탄불을 확인하셨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가끔은 조용히 장갑을 끼고
불구멍을 살펴보셨다.
그리고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부엌에 석유난로도 함께 들어왔다.
회색 몸체에 유리창이 둥글게 있는 난로,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훅’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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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연탄불 위에서
구운 고구마도 해주셨고,
군밤도, 전도, 작은 생선구이도 자주 올려주셨다.
언제나 따뜻한 물이 있는 부엌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조금 어설펐지만
서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었고
물 받침대 위에 양은 대야를 올려
엄마는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설거지를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 하나하나엔
아빠의 손길이 스며 있었다.
조금 더 기술이 필요한 일에는
목수였던 이모부가 며칠씩 집에 오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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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는
드디어 커다란 유리 미닫이문이 생겼다.
그전엔 겨울이면 마루가 너무 추워
밥을 급히 먹고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는데,
이젠 석유난로를 마루에 피우고
그곳에서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우리 가족에게
작지만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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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은 나에게도 조용한 용기를 주었다.
엄마가 안 계실 때면
나는 조심스레 연탄불 위에
계란 하나를 올려보았다.
기름이 튀지 않도록 살며시 익히고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톡 건드리면
그걸 밥 위에 올려 먹는 즐거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동생은 나보다 컸고,
항상 두세 배는 더 먹었다.
가끔은 라면을
혼자서 세네 개나 끓여 먹기도 했다.
그때도 연탄불이나 석유난로 위엔
무언가가 항상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이 찌지 않았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보다 더 많이 뛰어놀았기에
몸은 늘 가벼웠고
식욕은 넘쳐났고
배는 언제나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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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부엌은 그저 음식을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조용히 가족의 풍경이 바뀌는 곳이었고
아빠의 손과 엄마의 숨결이
보이지 않게 겹쳐지는 공간이었다.
따뜻한 연탄불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