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22화 열린 대문 그리고 떨리는 발걸음

22화. 열린 대문, 그리고 떨리는 발걸음

그날,

나는 혼자였다.


언제나처럼 몰려다니던 여자아이들이

이 날따라 다들 먼저 가거나

무슨 일인지 다른 길로 빠졌다.


하굣길이 혼자가 되면

괜히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끌리는 곳은 대길이네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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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네는

우리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대문이 크고 묵직한 집이었다.

숲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마당 안이 잘 보이지 않았고,

대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우리 집처럼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이 아니라

담장 너머는 언제나

상상으로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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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달랐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딱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어떡하지?’

망설이며 문 앞에 멈춰 섰는데,

마당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길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들의 웃음.

대길이네 누나들일 것이다.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낮게 늘어뜨린 고무줄 위로

누나들이 번갈아 뛰었고

대길이와 동생은 그 옆에서 뛰어보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따뜻하고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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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기를 냈다.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불렀다.


“대길아…”


대길이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어! 너 여기서 뭐 해?”

“그냥… 지나가다 봤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길이는 내 팔을 잡고

마당 안으로 끌어당겼다.


“잘 왔다. 들어와.”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대길이네 대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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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들이자마자

공기부터 달랐다.

큰 감나무가 마당 한복판에 그늘을 드리우고,

항아리 몇 개가 단정히 놓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였다.


누나들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고무줄을 튕기기 시작했고,

대길이는 옆에 나무 의자를 당겨주며 말했다.


“여기 앉아. 곧 엄마도 올 거야.”


나는 어색하게 앉았지만

괜히 웃음이 났다.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그 집 마당 한복판에

지금, 내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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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이야기는

정말 많다.

대길이의 누나들과도,

그의 동생들과도,

그리고 내 남동생들과도 얽힌

기억의 끈들이 엉켜

하나의 큰 그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다음 이야기로 넘기려 한다.


그날의 대문,

그 문이 열려 있던 순간의 떨림.

그게 내 기억 속

작은 용기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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