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23화 자개장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23화. 자개장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대길이네 누나들은

무려 여덟 명이었다.

거의 해마다 한 명씩 태어난 듯,

나란히 나이를 먹은 언니들이

집 안 가득 있었다.


그중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건

6학년이었던 쌍둥이 자매였다.


딱히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닮은 듯 다른 얼굴,

묘하게 비슷한 말투와 손짓은

나에겐 충분히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


나는 부러웠다.


그 나이에

매일같이 말을 섞고,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평생의 솔메이트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일까.


나는 누나도, 쌍둥이도 없었으니까.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 언니들이 나란히 앉아

같은 색 리본을 머리에 묶고

고무줄을 튕기고 있는 모습은

마치 텔레비전 속 장면 같았다.



---


대길이네 집은

상상 이상으로 크고

깔끔했다.

방은 많았고

마루는 길고 넓었다.


그리고 그 마루 한쪽 면을

온전히 차지한

커다란 붙박이장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처음엔 상숙이네 집에서 봤던

서랍 많은 장롱을 떠올렸지만,

이건 달랐다.

이건… 장롱이 아니라

무슨 보물창고 같았다.



---


장 전체가

자개로 덮여 있었다.

검은 바탕 위에

고운 자개 조각들이

물고기와 산수화, 구름과 학 같은

이야기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서서

그림을 하나하나 살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분명

고풍스러운 자개장,

그 집안에 오래전부터

자리해 있던 가보 같은 가구였다.


우리 엄마는

그런 자개장을 갖고 싶어

몇 년을 돈을 모아

조심스레 장만하셨다고 했는데


대길이네 집에는

그게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그때 나는

실제로 문을 열어보진 못했지만

그 자개장 안에는

보석함과 비단옷, 오래된 편지와

반짝이는 물건들이 가득할 거라

상상하곤 했다.



---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았지만

나는 자꾸만

그 자개장 앞으로 가게 되었다.


그 앞에 서서

반짝이는 자개 조각을

손끝으로 따라 그리다가

문득 대길이 누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예쁘지?”

“응… 너무 예뻐…”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고

그 누나는 잠깐 웃더니

그 앞을 쓰윽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어쩐지

살짝 부끄러워졌다.



---


그 집은 나에게

한 편의 이야기책 같았다.


여덟 명의 누나,

조용히 웃는 쌍둥이 자매,

자개장 안의 비밀들,

햇빛이 마루 위에 사선으로 내려앉던 풍경.


대길이네 집에서

나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배우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4부. 세상과 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