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27화. 억울했던 엄마의 혼례, 가난한 진실

27화. 억울했던 엄마의 혼례, 가난한 진실


엄마는 가끔 억울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나는 부자 집 아들인 줄 알고 시집왔지…

이 집에 집 한 채도 없는 줄은 몰랐지 뭐니.”


그 말은 원망이라기보다는

삶에 뒤늦게 깨달은 무게 같은 것이었다.

시댁이 넉넉하다고 해서 혼례를 올렸건만,

막상 와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그 많던 땅도, 집도

아빠의 몫은 아니었다.


그 시절 엄마는

정말 한 집안의 며느리로 오셨던 게 아니라

그 집안 전체의 ‘살림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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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시집오신 다음날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한 가마니씩 싸셨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개씩 도시락을 쌌어.

그걸 다 시누이네며 외사촌들까지 가져다줬지.”


말 끝마다 웃으시진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엄마에겐

잔잔한 분노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아빠의 외가댁은

가난한 사위보다는

시집간 딸을 더 끔찍이 여긴 집안이었다.

그 딸의 자식들—그러니까

아빠의 외사촌들—을 위해

아빠는 머슴처럼 일했고

엄마는 그들을 위해 새벽밥을 지었다.


그 누구도

그걸 부당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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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도대체 뭐 하나 물려받은 게 없잖니.”


엄마는 아빠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종종 우리에게 푸념처럼 털어놓으셨다.


나도 그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겪은 설움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한마디 변명도,

불만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계셨다.

아니면 손에 낫을 들고

마당 구석에서 작은 풀들을 뽑고 계시거나.


그런 아빠의 뒷모습은

어릴 땐 답답하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묵묵히 견디는 사람의 슬픔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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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 집안 어른들도

할머니의 부재가 미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결코 아빠에게 직접 닿지 않았다.


늘 말없이 일하고,

말없이 참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짐을 얹는 법이니까.


아빠는 그런 사람 중 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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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집에서

할머니는 내겐 언제나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분은 재혼을 하셨지만

마음은 늘 아빠 곁에 있었던 듯했다.


나는 가끔 상상했다.

할머니가 아빠를 꼭 안아주던 밤이 있었을까.

몰래 편지를 써서

아빠의 외삼촌 손에 쥐여보 낸 적은 없었을까.


아빠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어쩌면 마음 깊은 어딘가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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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억울함.

엄마는 종종 우리에게 말했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이제 안다.

말하지 않는 슬픔이

더 크고 오래가는 법이라는 걸.


아빠의 청춘은

가난의 진실 속에서,

가문의 허울에 눌린 채

고요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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