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과 나 사이

28화. 외로운 장남, 묵묵히 삶을 엮어간 사람

28화. 외로운 장남, 묵묵히 삶을 엮어간 사람


우리 집 마루는 작고 단출했다.

구석에 놓인 오래된 재봉틀 하나,

그 옆엔 곡식을 담아두던 뒤주.

작은방과 안방 사이로

덧마루와 유리 슬라이딩 문이 이어지고,

그 앞마당은 항상 무언가로 어수선했다.


나는 그 공간을

어릴 적엔 집에서 가장 넓은 곳이라 여겼고,

모든 추억이 그곳에 담겨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길이네 집에 다녀온 뒤,

그 믿음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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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네는

넓고 반듯한 마루를 가진 집이었다.

그 한 면을 가득 채운 자개장.

서랍이 아닌, 열고 닫는 큰 문들로 된 붙박이장.

자개 위엔 꽃과 새, 산과 물이 수놓아져 있었고

그 문을 열면 뭐라도 마법처럼 나올 것 같았다.


상숙이네 자개장이 손바닥만 한 보물상자였다면,

대길이네는 그 자체로 ‘전시관’ 같았다.


엄마는 자개장을 갖고 싶어

몇 해 동안 돈을 모으셨다고 했는데,

대길이네 자개장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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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우리 마루를 다시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 흔한 꽃밭 하나 없는 앞마당.

고무신이 흩어진 채 널브러져 있고

수레와 호미, 고무대야가 이리저리 놓인

정리되지 않은 일상의 풍경.


그곳엔 ‘장식’이라는 게 없었다.

오로지 ‘살아가는 것’만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당과 마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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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든 건

아빠의 삶이 투영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말없이 집을 고치셨다.

연탄 저장고를 만들고,

덧마루에 유리문을 달고,

겨울이면 마루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석유난로를 들여놓으셨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은

목수였던 이모부를 며칠씩 불러 도우셨다.

그러고는 손수 망치를 들고,

벽을 허물고, 새로 벽지를 바르셨다.


그 모습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기 세계를 지켜가는

장인의 태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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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안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집을 '지어가는' 분이었다.


부엌에 연탄이 들어온 날,

엄마의 요리는 한결 풍성해졌고

우리는 뜨거운 물에 얼굴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엄마가 없을 땐

나도 프라이 하나쯤은

구울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가 만든 변화였다.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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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누구보다 외로운 장남이었다.

장남이지만, 장남이 아니었던 사람.

가문으로부터도,

운명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가정을 만들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고요하지만 분명한 의지로,

한 사람의 생을 쌓아 올린 것이다.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지난 시간을

자랑하거나 푸념하지 않으셨다.


그저 삶의 바닥에서부터

조용히, 단단히

무언가를 엮어 올리셨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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