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외로운 장남, 묵묵히 삶을 엮어간 사람
28화. 외로운 장남, 묵묵히 삶을 엮어간 사람
우리 집 마루는 작고 단출했다.
구석에 놓인 오래된 재봉틀 하나,
그 옆엔 곡식을 담아두던 뒤주.
작은방과 안방 사이로
덧마루와 유리 슬라이딩 문이 이어지고,
그 앞마당은 항상 무언가로 어수선했다.
나는 그 공간을
어릴 적엔 집에서 가장 넓은 곳이라 여겼고,
모든 추억이 그곳에 담겨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길이네 집에 다녀온 뒤,
그 믿음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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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네는
넓고 반듯한 마루를 가진 집이었다.
그 한 면을 가득 채운 자개장.
서랍이 아닌, 열고 닫는 큰 문들로 된 붙박이장.
자개 위엔 꽃과 새, 산과 물이 수놓아져 있었고
그 문을 열면 뭐라도 마법처럼 나올 것 같았다.
상숙이네 자개장이 손바닥만 한 보물상자였다면,
대길이네는 그 자체로 ‘전시관’ 같았다.
엄마는 자개장을 갖고 싶어
몇 해 동안 돈을 모으셨다고 했는데,
대길이네 자개장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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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우리 마루를 다시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 흔한 꽃밭 하나 없는 앞마당.
고무신이 흩어진 채 널브러져 있고
수레와 호미, 고무대야가 이리저리 놓인
정리되지 않은 일상의 풍경.
그곳엔 ‘장식’이라는 게 없었다.
오로지 ‘살아가는 것’만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당과 마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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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든 건
아빠의 삶이 투영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말없이 집을 고치셨다.
연탄 저장고를 만들고,
덧마루에 유리문을 달고,
겨울이면 마루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석유난로를 들여놓으셨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은
목수였던 이모부를 며칠씩 불러 도우셨다.
그러고는 손수 망치를 들고,
벽을 허물고, 새로 벽지를 바르셨다.
그 모습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기 세계를 지켜가는
장인의 태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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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안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집을 '지어가는' 분이었다.
부엌에 연탄이 들어온 날,
엄마의 요리는 한결 풍성해졌고
우리는 뜨거운 물에 얼굴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엄마가 없을 땐
나도 프라이 하나쯤은
구울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가 만든 변화였다.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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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누구보다 외로운 장남이었다.
장남이지만, 장남이 아니었던 사람.
가문으로부터도,
운명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가정을 만들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고요하지만 분명한 의지로,
한 사람의 생을 쌓아 올린 것이다.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지난 시간을
자랑하거나 푸념하지 않으셨다.
그저 삶의 바닥에서부터
조용히, 단단히
무언가를 엮어 올리셨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