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끝에서 본 세상

19화 말없이 아팠던 언니

《오래된 천조각》

19화. 말없이 아팠던 언니


언니는 참 조용한 아이였다.

목소리도 낮았고, 웃음도 조용했다.

눈빛이 깊어 엄마를 꼭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눈빛이, 어느 여름부터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감기려니 했다.

그런데 며칠을 넘기고도 기운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미경 언니를 업고 병원에 다녀오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신 뒤, 언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삼킨 듯, 말없이 창밖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언니는 늘 걷기 시작했다.

아픈 몸으로 마당을 돌고, 골목을 걷고,

햇살 가득한 논두렁길도,

그 조용한 걸음으로 걸었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내게 자주 말했다.

“언니 잘 봐줘야 해. 꼭 따라다녀야 해.”

나는 다섯 살이었다.

작은 두 다리로 언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숨이 차고, 발이 아파도 멈출 수 없었다.

언니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언니는 우물가를 돌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조심조심 걸었다.

언니가 발을 헛디뎠을 때,

그 조용한 몸이 툭— 하고 물속으로 빠졌다.


나는 그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언니가! 언니가 물에 빠졌어요!”


다행히 근처에 계신 어른들이 얼른 달려와

언니를 꺼내주셨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언니는 더 깊이 잠기듯 아파졌다.

방 안에서 오래 누워 있기도 했고,

가끔은 다시 천천히 걷기도 했다.


아빠는 그 여름, 동네에서 먹은 개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아빠는 다시는 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언니는 단지 아팠던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 머물고 있었음을.


저녁마다 국어책을 외워 낭독하던 언니,

그 목소리가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이유는

아마도 언니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언어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언니의 걸음이 들려온다.

마당을 지나, 골목을 지나,

조용히 걷던 그 발소리.


그리고 나는

언니의 작은 그림자였던 나를 떠올린다.

다섯 살짜리의 그 마음을,

그 조용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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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는 조용히 아팠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걷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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