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나는 언니의 그림자였다
《오래된 천조각》 20화
〈나는 언니의 그림자였다〉
언니는 걷고, 또 걸었다.
말없이 창밖을 보다가, 느릿한 걸음으로 마당을 돌다가
어느 날은 논두렁길로, 어느 날은 골목 가장자리로
마치 어디론가 향하듯, 고요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숨이 찼고, 발이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다섯 살짜리 두 다리로,
나는 언니의 작은 그림자가 되었다.
엄마는 늘 말하셨다.
“언니 놓치면 안 된다.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어린 나는 그 말이
그저 언니가 멀리 가지 말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언니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는지도 모른다.
**
우물가를 돌며 걷던 언니가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그러다,
툭—
언니의 하얀 몸이 우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언니가! 언니가 물에 빠졌어요!”
내가 외쳤고,
동네 어른들이 달려와 언니를 건져주셨다.
그날 이후, 언니는 조금씩 말라갔다.
눈빛도, 걸음도, 마치 그림자처럼 옅어졌다.
**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언니가 왜 말없이 걸었는지,
왜 국어책을 그렇게 또박또박 외웠는지.
그 시절 우리 집 마당 한쪽,
아빠가 담배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던 이유.
엄마가 부엌에서 가만히 눈을 훔치던 이유.
그건 모두,
조용히 앓던 한 생을 품은
가족의 고요한 애도였다.
**
나는 다섯 살.
언니를 따라 걷던
그림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언니의 발소리가
기억 깊은 곳에서
살며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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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0화
〈나는 언니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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