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21화 솥꼭 놀이터와 앞산 비탈진 아지트

《오래된 천조각》 21화

〈솥꼭 놀이터와 앞산 비탈진 아지트〉


우리 집 뒷마당엔 큰 가마솥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솥꼭'이라 불렸던 그 자리.

아궁이엔 늘 장작이 남아 있었고, 솥뚜껑은 덮여 있든 열려 있든,

그 주변은 동네 아이들의 은밀한 놀이터였다.


솥꼭 위에 올라가 앉으면

세상이 다 내려다보였다.

들판도 보이고, 마당에서 풀 뜯는 토끼도 보이고

부엌에서 엄마가 들락이는 모습도 다 보였다.


우린 그 솥꼭 위에 앉아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날은 거기서 가마솥뚜껑을 살짝 열고

'마녀가 끓이는 약'이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서로의 손에 침을 바르며

영원한 친구의 맹세를 하기도 했다.


**


솥꼭이 지루해질 즈음,

우린 앞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비탈진 언덕이 나왔고

거기엔 나무뿌리가 튀어나온 그늘진 자리가 있었다.


그곳은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누구도 모르게 간식을 숨겨두기도 하고

고무줄놀이 줄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기도 했다.


가끔 언니들이 그곳에 와서

나뭇잎으로 점을 치거나,

나무껍질에 그림을 그리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꼭 듣게 되던,

그런 이야기들.


**


비탈진 앞산은 참 따뜻했다.

바람이 불어도 해가 비췄고,

앉아 있는 내내

흙냄새, 나뭇잎 냄새, 그리고 풀내음이 어우러졌다.


그 아지트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놀이터였고,

가장 커다란 마음의 비밀 장소였다.


**


지금도 가끔,

그 솥꼭 위에 앉아 있던 내 작은 발과

비탈에서 굴러 내려오던 웃음소리가

기억 속에서 또르르 굴러 나온다.


우리는 그 작은 공간에서

세상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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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1화

〈솥꼭 놀이터와 앞산 비탈진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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