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복숭아와 수박의 여름
《오래된 천조각》 23화
〈복숭아와 수박의 여름〉
1970년대 여름,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원한 게 없었던 건 아니다.
펌프에서 퍼낸 우물물은 얼음보다 시렸고,
그 물에 담근 과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엄마는 커다란 대야에 복숭아와 수박을 퐁당 담가 두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당을 쓸다 보면
달큼한 복숭아 향이 물 위로 살랑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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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는 햇살과 바람에 익어
부드럽게 손바닥 위에 얹혔다.
가끔 벌레 먹은 자국이 있어도
조금 도려내고 나면
그 속살은 너무도 달았다.
“이게 진짜 복숭아 맛이야.”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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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칼로 쪼개자마자
새빨간 속살이 햇빛을 반사하며 번쩍였다.
씨가 많아 뱉느라 바빴고,
손등이며 턱까지 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그 순간은 여름의 진짜 맛이었다.
우리는 종종
씨를 멀리 뱉기 시합을 했고,
수박껍질로 수세미 장난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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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덥고 지치기도 했지만
복숭아 하나, 수박 한 조각이면
세상이 다 용서되는 것 같았다.
그때의 복숭아는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크거나 반들거리지 않았지만
엄마의 손에 씻겨
우물물 속에서 건져낸 순간
무엇보다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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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름이 시작되면
복숭아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살짝 식혀 먹는 버릇이 있다.
그건 단지 과일을 먹는 게 아니라
그 여름의 마당과
엄마의 손,
그리고 펌프 소리를
다시 꺼내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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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3화
〈복숭아와 수박의 여름〉
냉장고보다 깊은 시원함,
기억 속 여름의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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