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24화 돼지밥 나르던 큰언니

《오래된 천조각》 24화

〈돼지밥 나르던 큰언니〉


우리 집 마당 끝 사랑채 뒤편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두 마리에서 셋, 넷으로 늘어나던 돼지들은

아침이면 꿀꿀 소리를 내며

우리들의 하루를 먼저 깨웠다.


**


돼지밥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하루 세끼 식사 후

남은 밥풀과 채소 자투리를

대야에 모아 두셨고,

그 위에 쌀겨를 섞고,

우물물에 불린 지게미를 부었다.


그걸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어

끓는 가마솥에 부으면

냄새 진한 돼지죽이 되었다.


**


돼지밥은

큰언니 미자가 담당했다.

고무장화를 꿰차고

양은 바가지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밥을 들고

비탈진 마당 끝으로 향했다.


내가 한창 언니를 따르던 때,

나는 돼지우리 앞에서

늘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됐다, 물러서 있어.”

언니는 내 머리를 가볍게 밀어내곤

돼지밥을 힘껏 쏟아부었다.


그러면

돼지들은 앞발을 쿵쿵 구르며

다투듯 먹기 시작했다.


**


언니는 돼지밥을 주고 나면

가마솥을 다시 닦고,

남은 재를 걷어내고,

지게미 자루를 접어두었다.


그 모든 동작이 익숙했고

빠르고 정확했다.


“언니, 안 힘들어?”

내가 묻곤 했지만


언니는 고개만 까딱할 뿐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땐 몰랐다.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던 언니,

더운 날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일부터 마당일까지 척척 해내던 언니.


**


지금도

돼지밥 냄새가 스멀스멀 떠오르면

나는 그 커다란 대야를 안고 걷던

언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던 그 얼굴,

무거운 바가지로도 흐트러지지 않던 걸음.

그게 바로

우리 집 큰언니의 모습이었다.



---


《오래된 천조각》 24화

〈돼지밥 나르던 큰언니〉

말 대신 움직였던 언니의 사랑을 기억하며.


공감 + 구독해 주세요.

작고 사소한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마루 끝에서 본 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