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26화 달력 속에 숨은 생일

《오래된 천조각》 26화

〈달력 속에 숨은 생일〉


우리 집 벽에는

장 짜리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다.

농협에서 나눠주는 그 달력엔

음력과 양력, 절기와 기념일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속에

내 생일도, 언니 생일도

적혀 있지 않았다.


**


엄마는 달력보다 계절로 사는 사람이었다.

해가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돌아오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엄마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 생일을 절대 잊지 않으셨다.


**


생일 아침이면

부엌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미역국, 잡채, 그리고 불고기.

평소엔 보기 힘든 그 반찬들이

오늘이 내 생일임을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자, 미역국부터 먹어.

오늘 네 생일이잖아.”


엄마는 그렇게

한 상 가득 사랑을 차려내셨다.


**


그리고 식사를 마칠 즈음,

엄마는 말없이 내 옷 주머니에

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살짝 넣어주셨다.


“친구들이랑 뭐 좀 사 먹어.”


짧은 말, 짧은 눈빛.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그 어떤 생일 케이크보다

더 진하고 따뜻했다.


**


친구들 생일엔

케이크와 초, 풍선이 있었지만

내 생일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과

엄마의 손맛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을

소리 없이, 그러나 가장 깊이

기억해 주는 사람이었다.


**


지금도

생일이 되면

그 조용했던 아침 식탁과

주머니 속 따뜻한 쌈짓돈이

그리워진다.


세상이 다 몰라도

엄마만은 내 생일을 기억해 주던 그 시절.

그날의 밥상은

마음속에 여전히 따뜻하게 차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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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6화

〈달력 속에 숨은 생일〉

“미역국, 잡채, 불고기, 그리고 말없는 주머니 속 용돈—엄마의 방식으로 완성된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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