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27화 우리 집에서 궂을 했던 날

《오래된 천조각》 27화

〈우리 집에서 궂을 했던 날〉


그날 아침,

엄마는 부엌일을 멈추고

마당을 물로 쓸었다.

대청마루며 돌계단까지

바가지로 물을 퍼붓고

솔가지로 박박 문질렀다.


“오늘은 구조하는 날이니

괜히 마당 어슬렁거리지 말고 방에 있어라.”


엄마의 말투는 단호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뛰놀 수 없었다.

대신 안방 창호문 틈으로

그 묘한 풍경을 몰래 훔쳐보았다.


**


어른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낯선 남자들 몇이 짚단을 깔고,

흰 무명천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큰 접시에 쌀이며 나물,

고기며 생선 같은 음식이 가지런히 놓였다.


작은 상 위에는

분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저기서 자꾸 탈이 나니,

사람을 불러야지. 산신께서 노하셨나 보다.”


**


‘산신’이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신령이

우리 마당에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뭔가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문틈으로 본 사람.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은

푸닥거리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나는 얼어붙은 것처럼 창호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다,

갑자기 큰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 집에 탈이 끼었으니

산신이시여, 내려오소서—!”


**


방 안에서 울리던 북소리는

바람처럼 가슴을 휘돌았다.

그리고 마루 아래,

나는 기이한 기분에 빠져

숨소리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음식이 사라지고

붉은 천과 흰 종이가 날릴 때,

어느 순간엔 나도 모르게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


그날 이후,

엄마는 오래된 항아리 몇 개를 치웠고

마루 밑에 쌓여있던 나무단들도 정리하셨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셨다.


**


굳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기만 했던 그날.


나는 어쩌면

그날이 우리 집에서 가장 조용한 전쟁이었고

또 가장 간절한 기도가 흘렀던 날이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 것 같다.


엄마는 그날도,

신에게 기도하고

아이들에게 침묵으로 가르쳤다.


**


그날의 마루,

그날의 북소리,

그날의 엄마 눈빛이

지금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소리 없이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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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7화

〈우리 집에서 궂을 했던 날〉

“그날의 북소리와 향냄새,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다잡던 엄마의 침묵—그건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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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는 “마당 끝 평상 위, 삼일장 날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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