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33화

“단칸방의 시작”


엄마는 기와집을 떠나

사랑방 단칸방으로 들어왔고,

그 방에서 둘째 언니, 미경 언니를 낳았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젖먹이 하나를 안고 막 이사해 온 엄마가

두 번째 아이를 품었을 때,

집엔 변변한 장롱도, 식탁도 없었다.


아빠는 서울로 올라가셨다.

서울역 근처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셨단다.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

짐꾼이든 막노동이든 가리는 것 없이

일감을 받아야

저녁 밥값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


서울역 광장에서 아빠는

한 손엔 도시락, 한 손엔 고무장갑을 들고

하루하루 몸으로 생계를 이었다.


엄마는 단칸방에서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봤다.

미자 언니는 겨우 갓난쟁이였고,

미경 언니는 이제 막 태어났으니

엄마는 한동안 방 밖으로 나갈 시간조차 없었다.


아빠는 자주 집에 오지 못했다.

"외갓집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돈을 벌어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져 지내며

엄마는 아이를 낳고 키우고,

아빠는 도시에서 고된 하루를 버티는 삶.


그런데도

아이는 금방금방 생겼다.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그 시절을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뭐가 그렇게 한가했는지 몰라.

애는 또 금방 생기더라고.”


가난한 부부였고,

가난한 집이었지만,

그 작은 방엔 늘 생명이 들어찼다.


돌이켜 보면,

엄마와 아빠는 그 어떤 말보다

함께 만든 아이들로 서로를 붙잡았던 것 같았다.


사랑을 말할 틈도 없이

현실에 치이고

생계를 걱정했지만,

그 와중에도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놓지 않았다.


아빠는 말이 없었지만

서울역에서 일하고 돌아와

짧은 밤을 자고 다시 떠날 때

언제나 아이들 이마를 만지고 갔단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저이는 저이 몫을 하고 있다”**고 믿었고,

아빠 역시

“식구들은 내가 지켜야 할 이유”라 여겼을 것이다.


그 단칸방에서

우리 집의 진짜 역사가 시작됐다.

큰 기와집도, 외갓집의 유산도 아닌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만으로 쌓아 올린 한 칸짜리 가족.


그 방에서 미경 언니가 태어났고,

곧이어 또 다른 동생이 생겼고,

언젠가는 나도 그 방에서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 시절,

엄마의 품은 좁았지만

그 안엔 늘 아이가 있었고,

아빠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손이 우리 가족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진 것 없던 단칸방에서

우리는 가장 따뜻하고 진짜다운 가족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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