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39화

기억의 골목 39화

언니의 달리기


내가 태어난 해,

언니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일곱 살 차이 나는 나를

언니는 품에 꼭 끌어안고 키웠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 어린 미경언니를 챙기며

밭일이며 살림을 쉼 없이 이어가셨고,

나는 늘 어디선가 묶이거나 눕혀져 있었다.

엄마는 대야에 담요를 깔고 나를 눕히거나,

긴 천으로 내 다리를 기둥에 살짝 묶어두기도 했단다.

밭일하다가도 내 울음소리가 들리면

쪼르르 달려와 젖을 물리셨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 엄마의 하루를

언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아이라고 불릴 나이였지만

언니는 매일,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숨이 넘어갈 만큼 집으로 달려왔다.


“엄마! 순이 괜찮아요?”


책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맨발로 뛰어 들어와

나를 들여다보던 언니의 눈엔

늘 사랑과 책임이 가득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외딴 언덕 위 초가집에서

언니는 엄마의 또 다른 어른이자

나의 첫 번째 보호자였다.


미경언니는 그때 겨우 세 살.

엄마는 그 어린아이 손도 잡아가며

두 딸과 막내를 키우느라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호미를 잡았고,

저녁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언니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동생들의 첫 번째 놀이터, 울타리, 어깨가 되어주었다.

책가방 옆에 기저귀를 내려놓고

자기 숙제보다 내 울음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던

그 언니의 열두 살.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니는 지금도 그날의 내 얼굴을 또렷하게 말해준다.

"순이는 눈이 동그래서 꼭 인형 같았어."

“울음을 참는 게 습관이었지.”

그리고 그 말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언니를

나는 가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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