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기억의 골목 61화
언니를 따라 떠난 길, 그 끝에 아빠가 있었다
둘째 이모는 어느 날 불쑥 순천을 떠났다.
그땐 엄마도 몰랐다.
어떻게 평택에 사는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된 건지,
무엇이 이모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다만 이모는 분명하게 말했다.
“난 순천에서 일만 하다 죽긴 싫어.”
시집살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자기만의 삶을 가져보고 싶다는 그 말에
엄마는 오래도록 마음이 남았다.
순천의 바다와 들판,
아침이면 제일 먼저 깨야 했던 부엌일,
학교도 채 다니지 못하고
밭일에 논일에 지친 어린 날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의 등을 누르고 있었기에.
엄마는 그때 결심했단다.
‘나도 언니처럼, 떠나고 싶다.’
그러니까 엄마는 사랑보다 앞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지도를 짚고, 마음을 열고,
그렇게 아빠를 만난 셈이었다.
“나는 네 아빠가 좋아서 시집간 게 아니라,
그 사람 사는 그 동네가 좋아서 따라간 거야.”
엄마는 웃으며 자주 그렇게 말했다.
둘째 언니가 평택으로 시집을 간 후,
엄마는 외할머니를 졸랐다.
“언니 있는 데로 시집보내 주세요.
그쪽은 산도 낮고 들판도 넓고, 바닷바람도 안 불어요.”
외할머니는 반대하셨다.
딸 하나도 시집보내서 허전한데
또 다른 딸마저 멀리 떠나보내기엔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단단했다.
“나는 더는 일만 하며 살 순 없어요.”
그 한마디에
외할머니는 조용히 물러서셨다.
그리하여 작은 키에 야무지고 조용한 그 여자는
친정으로부터 몇 백 리 떨어진 땅에
자신의 삶을 걸기로 했다.
엄마가 아빠를 처음 본 날은
시장 근처 다리 위였다고 한다.
둘째 이모의 소개로
아주 잠깐, 인사만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아빠는 그 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고.
그날, 엄마는 속으로 생각했단다.
‘저 사람, 무뚝뚝하고 뭔가 꿍한데…
그래도 일은 잘할 것 같다.’
그게 결혼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하니
사랑도, 연애도 없던 시절
결혼이란 건 어쩌면
누구와 함께 고단함을 견디느냐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엄마는
둘째 언니를 따라,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순천의 흙길을 뒤로하고
한 남자의 곁으로 향했다.
친정에서 처음 떠나던 날,
엄마는 말없이 마당 한 귀퉁이에 섰다고 한다.
기와집 기둥 사이,
자기 손길이 묻은 다랑이,
여름이면 수박을 씻던 우물,
그 모든 것들이 등 뒤로 밀려나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단다.
“왜 눈물이 안 나왔을까?”
엄마는 늘 그랬다.
“너무 많이 참고 살아서,
울 줄도 잊어버렸나 봐.”
그러나 엄마는 말하지 않았지만
언니가 있어 괜찮았을 것이다.
멀리 떨어졌지만
낯선 마을, 낯선 시댁, 낯선 이름의 사람들 속에서
같은 하늘 아래
언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엄마에게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마침내 슬레이트 지붕 아래 한 가정을 일으키는 삶으로
조용히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떠났던 그 결심의 길,
그 길 끝엔 언니와의 우애,
그리고 아빠와의 인연,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시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