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 너머 저쪽》
제10화. 엄마의 수첩
미경언니와의 방을 나와
나는 홀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딘가,
복도 끝에서 또 다른 문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걷는 중
문득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은
복도 한편에 걸린 낡은 코트를 흔들었다.
나는 코트 앞으로 다가갔다.
색이 바랜 모직 코트,
가슴께엔 단추가 하나 빠져 있었고
주머니는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코트는…
엄마 냄새가 났다.
비누와 볕에 마른빨래,
그리고 삶의 흔적.
나는 조심스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안에서
작은 수첩 하나가 손에 잡혔다.
허름한,
거의 다 뜯어진 노란 공책.
표지는 물에 젖었다 마른 자국이 그대로였다.
나는 조용히 펼쳤다.
안에는 빼곡한 글은 없었다.
딱 한 장—
오래된 흑백 사진이 끼워져 있었고,
그 옆엔
편지 봉투 하나.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편지는 짧았다.
> “미순아.
엄마가 너한테
끝까지 말 못 한 게 있어.”
“사실…
나는 너를 만나고
다시 사람이 되었어.”
“그전까지는
그냥 살기만 했어.
사랑하지도,
숨 쉬지도 못했지.”
“근데 너는
내 숨이 되어줬어.”
“그래서…
엄마는 너한테 미안하지 않아.
고마워, 내 딸.”
— 엄마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왜 그 말을
엄마는 살아 있을 때 해주지 않았을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 말은,
엄마가 죽고서야
비로소 꺼낼 수 있었던 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