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40화 감자 굽던 날

《오래된 천조각》

40화. 감자 굽던 날


7월 초,

낮이 길어도 참 길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지붕 아래 그늘로 숨거나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부엌에서 나는 냄새를 훔쳐보곤 했다.


하지만 해가 조금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온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현미네 큰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마당 구석

연탄재 담긴 철소쿠리에

모깃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장작을 모아

모닥불을 지핀다.


어른들은 저녁을 마치고

모처럼의 여유 속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슬며시 나와

흙 묻은 감자 한 망,

껍질째 헝겊에 싸인 콩 한 바가지를

불가에 내려놓는다.


“자, 굽자!”

작은 탄성이 터지면

우리의 밤은 시작이다.


감자와 콩은

장작불 주변에서 이리저리 굴려지고

터진 껍질 사이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평소엔

그렇게 먹기 싫었던 콩이

왜 이리 꿀맛인지,

서로 손등을 치며

먼저 꺼내려 장난을 친다.


“야, 그거 내 거야!”

“아냐, 내가 굽던 거야!”


누구의 것도 아닌 것 같고

모두의 것이기도 한

그 밤의 감자와 콩.


불빛 속에서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거무튀튀한 얼굴이 웃음으로 번지고

불빛은 어느새 마음속까지 번진다.


그날 밤

누구는 콩을 먹다 혀를 데었고

누구는 껍질 깐 감자를 나눠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보다 웃음으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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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처럼 뜨겁고, 콩처럼 고소한 그날의 기억이

지금 당신의 마음에 구워집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41화 – 멋쟁이 외삼촌이 우리 집에 왔어요

진한 스킨 냄새와 멋진 구두,

그리고 어린 미숙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날의 외삼촌 이야기, 곧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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