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영진이네 집 아랫목의 고스톱
《오래된 천조각》
44화. 영진이네 집, 아랫목의 고스톱
영진이네 집은 과수원 한가운데 있었다.
배나무, 감나무, 복숭아나무들이 사방에 펼쳐진 그 집은
방도 크고 마루도 길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집이었다.
엄마는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시고모인 영진 엄마를 찾곤 했다.
아마 그 집의 따뜻함과 고모의 포근함이
엄마의 마음을 덜컥 안아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영진이가 좋아서
그 집에 가는 날이면 들뜬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세 살 어린 영진이는 얼굴도 곱상하고
나를 잘 따랐다.
함께 소꿉놀이도 하고,
마루에서 과자 봉지를 들고 앉아
작은 웃음을 오래 나누었다.
겨울, 찬바람이 문틈을 파고들던 날이면
영진이네 아랫목이 참 따뜻했다.
엄마와 영진 엄마, 그리고 우리 셋은
두툼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앉아
장난처럼 고스톱을 쳤다.
“10원 걸고 치는 거야. 알았지?”
엄마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그날의 고스톱은 돈을 벌기 위함도, 이기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웃고 떠들고, 마음을 놓는 놀이였을 뿐이다.
화투패가 탁탁 맞부딪히는 소리,
이따금 쏟아지는 웃음소리.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발끝엔
엄마의 손길이 포근히 덮였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세대를 거슬러 통하는
자매이자 친구처럼 느껴졌다.
고모는 고소한 고구마를 아랫목에서 꺼내 오고,
엄마는 이불 안에서 내 손을 꼭 쥐어주었다.
나는 그 손이, 그 공간이, 그 웃음이
지금도 눈 감으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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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아랫목에서 피어난 가족의 웃음,
세대를 이어 가슴에 남는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45화 – 농악놀이, 동네가 들썩이던 날
징 소리와 꽹과리,
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뛰쳐나온 그날의 풍경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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