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비료포대. 썰매와 겨울 골목
《오래된 천조각》
43화. 비료포대 썰매와 겨울 골목
서해안 끝자락에 자리한 우리 동네는
한겨울이면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새하얗게 덮인 세상, 찬바람은 볼을 에었지만
그 겨울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집 앞에는 작은 야산이 있었다.
비탈진 그 산자락은
겨울만 되면 우리 동네 아이들의 천국이 되곤 했다.
그 야산 건너편은 영진이네 동네.
영진이네 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셨고,
그곳은 외고모가 사시는 동네이기도 했다.
나는 그 겨울, 영진이네 집을 자주 찾았다.
세 살 아래인 영진이를 데리고 잘 놀아준 덕에
고모할머니는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다.
따뜻한 아랫목에 군고구마라도 있으면
“미숙이 이리 와서 같이 먹자~” 하시며
한 덩이 먼저 손에 쥐여주셨다.
눈이 내리면,
우리 동네와 영진이네를 잇는 골목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미끄럼틀이 되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비료포대에 몸을 실었다.
낡은 비료포대 안에 짚을 한가득 담아
푹신하게 만들어 미끄럼을 탔다.
속도가 붙을수록 포대는 눈길을 가르며
껄껄껄 웃음소리와 함께 골목 아래로 내달렸다.
포대 썰매는 우리들의 작은 겨울 특급열차였다.
손은 빨갛게 얼고, 양말은 젖고,
코끝은 얼얼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해 질 무렵,
눈이 부옇게 내려앉은 골목길 어귀에 앉아
눈사람 옆에서 마지막 포대 썰매를 즐기던
그 겨울날의 나, 미숙이가 지금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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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포대 한 장에도 꿈을 싣던 그 시절의 겨울,
그 웃음과 체온을 지금 당신의 마음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44화 – 영진이네 집에서의 화투놀이
겨울밤 아랫목,
빨간 장판 위에 펼쳐진 화투패와 고소한 웃음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섞인 따뜻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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