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긴게 제일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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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이도 살아남기》

한여름.
그날도 후덥지근한 바람이 창밖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온몸에 땀이 배어들어도
나는 묘하게 전투적이 된 채
에어컨도 안 켜고 청소를 시작했다.

오래된 에어컨이라 전기세 걱정에 도저히 혼자 있은 땐. 안 켜고 버틴다.

창틀 틈새며,
냉장고 위 먼지며,
그동안 ‘안 보이니까 괜찮겠지’ 하던 것들이
하필 이날 다 눈에 띄었다.

그렇게 걸레질을 하다,
갑자기 확 — 더위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도 덥고, 마음도 덥고,
기분까지 눅눅해지려는 찰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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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 한 대면 다섯 식구가 돌아가며 “제일 강하게!”
외치던 여름이었다.

그땐 어떻게 이 더위를 버텼을까?

찬물에 발 담그기.
마루에 배 깔고 누워 부채질.
수박 껍데기 이마에 올려놓기.
그리고 가장 강력한 한 방법 아이스크림 먹는 척하면서 얼음 깨물기.

나는 그걸 생각하며
현관 쪽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한 발은 집 안,
한 발은 베란다 쪽 그늘로 뻗었다.
그리고는 찬물에 적신 수건을 목에 두르고
거실 바닥에 철퍼덕 엎드렸다.

“그래, 이게 진짜 여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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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에어컨 없인 못 산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더위를 이기는 건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살아남겠다는 생활력이다.

그날 나는
냉동실에 있던 얼음 하나를
입에 쏙 넣고 중얼거렸다.

> “내가 에어컨이야. 내가 시원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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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덥다.
그런데 웃긴 건,
이 더위마저도 추억이 된다.

그러니 오늘도 땀 한 바가지 흘리고 나면
에어컨 없이도 속이 후련하게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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