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잡곡밥의 비밀
국민학교 4학년.
그땐 **‘도시락 검사’**라는 게 있었다.
영양교육 차원이라며 선생님이 뚜껑을 열어보곤 하셨다.
그 시절의 ‘이상적인 도시락’은 이랬다.
☑ 잡곡밥
☑ 나물
☑ 김치
☑ 조금의 생선
하지만 우리 집엔
잡곡밥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계셨다.
왜냐고요?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질린다.”
아버지의 확고한 식성 앞에
엄마는 곤란해지셨다.
하지만 포기? 그건 엄마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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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온 것이
엄마표 ‘한솥 안 두 체제’ 전략.
엄마는 쌀밥을 한가득 안치고,
잡곡을 조심스레 한 귀퉁이에 올려
그냥 같이 지었다.
그래서 우리 집 밥솥은
한쪽은 하얀 쌀밥,
다른 쪽은 자그마한 회색 잡곡밥.
아빠는 몰랐다.
자기 밥그릇엔 언제나 눈부신 쌀밥만 담겨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엄마는 나와 언니의 도시락 통에 묵묵히 잡곡을 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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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실수로 잡곡 쪽을 푹! 퍼서
아빠의 그릇에 담아버리셨다.
한 숟갈 뜨고 나서
그분은 정적 속에 말씀하셨다.
> “이거 밥이… 낯이 많이 익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어머,
그건 우리 딸들이 싸갈 도시락용이에요~
잘못 펐네요~”
그 순간 아빠 눈이 살짝 흔들렸고,
나랑 언니는 숟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아빠한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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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엄마는 잡곡을 좀 더 깊숙이 감췄고,
아빠의 밥을 퍼기 전에 꼭 확인하셨다.
“잡곡밥은… 저쪽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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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 밥솥 솜씨가 기가 막히다.
한솥 안에 두 마음을 넣고,
두 세대의 입맛을 지켜낸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지혜 덕에
나는 선생님 도시락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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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잡곡밥 하나도
작전처럼 정성으로 지어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밥솥을 열면
나도 모르게 쌀밥 쪽부터 확인한다.
> “여긴… 누구 밥이었을까?”
잡곡밥 한 숟갈에도
웃음이 숨어 있다.
그냥 웃긴 게 제일 웃겨.
진심은 언제나 그 안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