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3화. 현미네 집과 동네모임

현미네 집은 정말 컸다.

계단을 열 개쯤 올라가야 사랑채 마루가 있었고,

사랑채는 네다섯 칸이나 되었다.


문을 두 개 지나면 넓은 마당 한가운데 꽃밭이 있었다.

아빠와 외사촌 관계였던 현미네는 친척이 가장 자주 드나드는 집이었다.


현미 엄마는 한 달에 한두세 번 제사상을 차렸다.

현미 아빠는 젊잖으셨는데, 어느 날부터 외국에 가셨다.

그래서 집은 크지만 식구가 거의 없었다.


현미 엄마, 현미 그리고 나와 똑같이 남동생 둘이 있었다.

나는 언니가 있었지만, 현미는 장녀였다.

그래서 현미는 엄마 대신 집안일도 곧잘 했다.


나는 혼자 이곳저곳 다니며 놀 수 있었지만,

현미는 장녀라 애 어른 같았다.


나는 남동생들을 데리고 거의 매일 현미네 집에 갔다.

현미 엄마는 나를 보면 늘 ‘내일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가면 제사 때 남은 음식들이 꼭 있었다.


식구는 적었지만 친척들이 제사 때마다 모였다.

때로는 이틀 연속, 때로는 며칠 간격으로 제사를 지냈다.


어느 날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졌고,

어느 날은 간소했다.


저녁에 현미네 집에 가면 친척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집 정원과 대청마루는 작은 공간들이 참으로 다양했다.


현미네 사랑채는 거의 비어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잘 사용했다.


사랑채에는 숨을 곳이 많았다.

붙박이장 같은 게 방마다 있었고, 이불들도 있었다.


사랑채 툇마루에서는 우리 마을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바깥 마당도 있어서,

봄부터 늦가을까지 밤마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온 동네 어른과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곤 했다.

거의 매일 그랬다.



《4화 – 정숙이네 방, 햇살과 함께한 오후》

“이불은 따뜻했고, 햇살은 그 위로 스며들었어요.”


정숙이네 집엔 참 따뜻한 방이 있었어요.

그 방에선 고구마 껍질이 벗겨지고,

엄마들의 소곤소곤 소리가 벽지를 타고 흘렀죠.

이불속에서 속삭이던 비밀 이야기들,

그 사이사이로 퍼지던 정숙이 엄마의 따끈한 말솜씨.


햇살 가득한 방 한편, 아이들의 숨결이 포개지던 시절.


4화는 수요일 오늘 오후 8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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