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단단한 울타리처럼 있어주었다.
28화 내가 몰랐던 진실
선배와 회사에서 다시 마주한 지 석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난 여전히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선배는 그런 내게 특별한 말 없이도
늘 단단한 울타리처럼 있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가 있었다.
“팀장님, 사장님이랑 통화 자주 하시더라. 역시 아들이라 그런가?”
“근데 티도 안 내지 않냐?
우리 회사에 사장 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야.”
그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사장 아들? 선배가...?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나와 커피를 마시고
사소한 업무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하던 선배가,
그 위치의 사람이라니.
곧바로 인사팀에 있는 동기에게 슬쩍 물었다.
“우리 팀장님, 혹시 사장님하고 가족이야?”
동기는 잠깐 망설이다가
“... 직계는 맞아. 근데 여기선 아무도 그 얘기 안 해.
팀장님이 절대 그런 얘기 못 하게 했거든.
스스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대.”
그날, 퇴근길에 난 많이 걸었다.
종로 거리도, 선배와 자주 가던 카페도 지나쳐서
익숙한 건물 외벽에 내 그림자만 길게 비췄다.
그런데 그 그림자 속에서 자꾸
그때 그 선배의 말투와 눈빛,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동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네가 결정해. 내가 도와줄게.’
‘넌 언제나 최선을 다했잖아.’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자기가 누구인지로 날 압박한 적이 없었다.
도리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조금 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바랐고
그 과정에서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 주변을 돌며 나를 지켜주기만 했었다.
그래서 더 복잡했다.
이제 와서 그가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게,
마치 그 사람의 마음조차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 사람의 진심을 부정하게 되는 게 싫었다.
며칠 뒤, 선배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둘이 마주쳤다.
말없이 버튼을 누르던 선배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들었지?”
난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 부담 갖지 마.
그걸로 널 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 말에 난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말 그랬다.
어떤 순간에도, 선배는
나를 밀어내지도, 억지로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내가 힘들어할 땐 기다려줬고
내가 외면할 땐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그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쉽게 가질 수 없는 품위였다.
그날 이후로, 선배를 대하는 내 눈빛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사장 아들이라는 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조차 가볍게 보이게 만든 그의 사람됨이
더 중요하고 무게 있게 느껴졌다.
난 다짐했다.
어떤 감정이 다시 피어난다 해도
이젠 도망치지 않겠다고.
그게 선배가 나에게 늘 바라던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이라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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