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장독대 아래의 진실

마루 끝 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 장독대 아래의 진실

사진은 오래돼 눅눅했고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연주는 마른 수건으로 조심스레 사진을 닦았다.
사진 속엔 세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언니, 그리고…
놀랍게도 아버지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연주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기억 속의 아버지와 사진 속 남자는,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더 젊고, 더 부드러운 눈빛.
그토록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이 사진은 도대체 언제 찍은 거지?”

사진 뒷면을 뒤집자 흐릿하게 연필로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1981.5. 어느 날. 연주 5살.
그리고 그 아래 조그맣게 영재 외삼촌 촬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외삼촌…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
한동안 외가에서 자주 오던 사람.
언니를 많이 예뻐했고, 엄마와는 유난히 조용한 말투로 대화하던 남자.
하지만 그 외삼촌은 언제부턴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주는 사진을 손에 든 채 주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타지 않고 남아 있던 엄마의 메모지 뭉치를 꺼냈다.
그 안에 '영재'라는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영재… 1985년… 부산… 누나가 울었다.
그 메모는 딱 한 줄,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은 연주의 심장을 내려앉게 했다.

“엄마가… 울었다고?”

그 시기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던 해와 겹친다.
그럼 아버지와 외삼촌, 엄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연주는 그날 저녁, 할머니 방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곳엔 오래된 서류며 편지 봉투들이 먼지에 쌓인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전단지들 사이에서 낡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 찬 편지 세 통이 들어 있었다.
보낸 사람은 전부 ‘영재’였다.
편지는 모두 엄마 앞으로 쓰인 것이었다.

읽는 내내 연주의 손이 떨렸다.

> “누나는 끝내 아무 말도 안 하겠지만, 난 죄책감으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날 이후로 형과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연주를 처음 보고… 그 아이가 누굴 닮았는지 알게 됐을 때, 나는 도망쳤어요.”



연주는 편지를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오래된 마룻바닥이 삐걱 소리를 냈다.
마치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이.

'그 아이가 누굴 닮았는지 알게 됐을 때'…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연주는 머릿속에서 연산을 돌렸다.
혹시, 자신이…

그날 밤, 연주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두 눈은 잠들 수 없었다.
천장에는 낡은 형광등이 깜빡이며 오래된 진실을 따라가는 연주의 길을 비춰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 모든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아직 할머니가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꼭 물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모르게 될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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