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흰 고무신의 방향

마루 끝 추리 27화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흰 고무신의 방향

흙먼지를 뒤집어쓴 오래된 고무신 한 짝이 마루 아래 처마 끝에서 발견된 건, 그해 여름, 연주가 열두 살이던 해였다.
비가 많이 온 장마 뒤였다. 처마 끝 나무기둥에 곰팡이가 핀 걸 본 엄마는 연주에게 마당 쪽을 정리하라 했고, 빗자루를 들고 마루 끝에서 허리를 숙인 순간, 그 하얀 고무신이 나뭇잎 더미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거…… 누구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고무신은 너무도 작고 하얘서, 마치 시간이 멈춘 한 조각 같았다. 연주는 그 고무신을 쥔 채 잠시 숨을 멈췄다. 반질반질 윤이 난 건 아니었고, 굽이 살짝 찌그러지고 흙먼지가 굳어있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맴돌았다.

그날 저녁, 연주는 아버지의 방 앞에 조용히 그 고무신을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신발은 사라져 있었다.

그 일은 오랫동안 잊힌 듯했지만, 이십 년이 지나 다시 고향집에 내려온 연주는 그날의 흰 고무신을 마루 끝 꿈속에서 다시 마주한다.


“얘야, 넌 기억 안 나니? 네 사촌 중에, 사고로 먼저 간 아이가 있었잖아.”
마을 어귀에 살던 할머니가 마당에 앉아 손톱을 다듬으며 연주에게 툭 던지듯 말했을 때, 연주는 몸을 굳혔다.

“사촌이요?”

“그래, 큰집 딸. 여섯 살 때 마당 개울에서 빠졌다고 했지. 시끄럽게 울고 나선 그다음 날 사라졌어.”

연주는 숨이 턱 막혔다.
그 이야기는 가족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해 여름, 마루 끝에서 담배를 참 많이도 피웠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벽을 바라보던 눈빛도, 그때부터 달라졌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마루 아래에 숨겨져 있던 건, 잃어버린 아이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슬픔, 어머니의 침묵, 언니의 외면이 모두 거기에 함께 묻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고무신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왜 하필 연주가 그걸 발견해야 했는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마루 끝 추리의 마지막 실마리는, 집 안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날 무언가일 것이다.
기억은 숨길 수 없고, 진실은 결국 돌아오니까.


#마루 끝추리 #고무신의 기억 #잃어버린 여름 #가족의 비밀 #브런치연재 #황미순작가 #에세이소설 #기억탐색기 #추리감성에세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0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6화 26화 – 장독대 아래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