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머리 위로 날아든 침묵

37화. 세상과 나 사이

소제목: 머리 위로 날아든 침묵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그날 아침도 평소처럼 자습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잠시 다녀오신다며 교실을 비우셨고,
아이들은 처음엔 책을 읽는 듯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함이 길어질수록, 작은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외에
슬그머니 수다와 속닥거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의자에 몸을 기대더니 이내 책상 아래 발을 툭툭 차기 시작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늘 그렇듯, 짝과 눈을 맞추고 조용히 뒤를 돌아 앉았다.
아주 잠깐일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이 곧 돌아오실 테고, 다시 조용히 책을 펴면 아무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현철이의 목소리가 교실 한쪽에서 번개처럼 터졌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단단하고 매서운 그 말 한마디에, 교실이 얼어붙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휙.

현철이의 책받침이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딱, 하고 앞자리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진 그 얇은 플라스틱 판의 소리는
온몸을 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놀라고, 당황하고, 무섭고…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철이는 말없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책을 펼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선생님도 돌아오지 않으셨고, 누구도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현철이가 더 이상 ‘어려운 아이’가 아니라
‘두려운 아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교실이 조용했던 이유는,
선생님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현철이라는 무언의 권력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조용히 책을 읽던 시간은 ‘자발적 질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감시의 시간이었는지도.

그날 나는 처음으로 확실히 느꼈다.
우리는 친구이면서도, 누군가에겐 순종을, 누군가에겐 침묵을 강요당하던 작은 사회 속에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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