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세상과 나 사이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소제목: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필명: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큰 소리를 싫어했고, 싸움 구경은커녕 누가 얼굴을 붉히는 것만 봐도 불편함이 올라왔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교실 안에서 될 수 있으면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그게 나만의 방식이었다.
주목받지도 않고, 눈치 보지도 않고, 그냥 책상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상상을 이어가고, 시간을 통과하는 일.
그게 나에겐 가장 자연스러운 하루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친했던 몇몇 친구들과 둘러앉아 소곤거리거나,
책 속 주인공처럼 노트에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는 아이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오늘 읽다 만 책의 뒷부분을 궁금해하거나,
창가에 앉아 나무에 앉은 참새를 관찰했다.
어쩌면 나는 항상 '밖'에 서 있던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세계 안에서, 조용히 머무는 방식으로.

그래서였을까.
그날, 자습시간에 머리 위로 책받침이 날아든 이후로
나는 현철이의 행동을 점점 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되었다.
굳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가 커질 때면 일부러 책에 더 몰입하는 척했다.
그가 쉬는 시간에 교실을 휘감고 돌아다닐 때도,
선생님의 손발이 되어 교탁 옆에 서 있을 때도,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노트의 칸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그 아이의 존재는 여전히 교실의 중심이었지만,
내 눈에서는 점점 바깥 풍경처럼 멀어졌다.
아예 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볼 이유도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다.

사실은 무서웠다.
그때 느낀 얼어붙는 공기,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버렸던 내 몸,
그 기억이 내 안에 가만히 자리 잡았고,
나는 조용히 그 감정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아이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느꼈을 뿐.
그리고 나는, 그 세계에 들어갈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내가 만들어낸 작은 우주 안에서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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