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창고 절도(?) 소동
수도관 대참사 이후, 집주인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비밀번호 0000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새 비밀번호를 발표했다.
“비밀번호는… 비밀입니다.”
우린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안 알려줬다.
101호 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
“아니, 우리 세입자도 창고 쓰라고 했잖아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안 돼요. 농기구는 농기구일 뿐, 장난감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못 쓴다고 하면 더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날 저녁, 102호 아저씨와 나는 창고 앞에 모였다.
“이거, 그냥 비밀번호 몇 번 눌러보면 되잖아.” – 102호.
“그래도 괜히 경보 울리면…” – 나.
“경보? 이거 시골 창고야, 경보는 무슨 경보야.”
그래서 시작된 비밀번호 추측 대작전.
0001, 1111, 1234, 2580… 다 틀렸다.
한참 누르다가 갑자기 창고 문이 ‘딸깍’ 열렸다.
우린 동시에 소리쳤다.
“됐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손전등을 비추니, 거기엔… 101호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 너네도 왔냐? 나 먼저 와 있었는데.”
우린 서로를 멍하게 쳐다보다가 동시에 웃음 터졌다.
이게 무슨 ‘절도 모임’이야?
그렇게 셋이서 창고 안에 들어갔다.
농기구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지만, 평소보다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아저씨가 청소했나 보네.” – 나.
“그럼… 살짝 써도 모르겠는데?” – 102호.
그때 101호 아주머니가 작은 삽을 들며 말했다.
“이거 하나만 빌려갈게. 마당에 꽃 좀 옮기려고.”
나도 곡괭이를 슬쩍 집어 들었다.
“나도… 잡초 제거 좀 하게.”
결국 셋 다 뭔가를 들고 창고를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문 앞에 집주인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아주 ‘도둑의 날’이네?”
우린 동시에,
“아… 이게 아니고요…”
“그게… 문이 열려 있어서…”
“아니, 꽃 옮기려고…”
서로 변명하다 보니 말이 꼬였다.
아저씨는 한숨을 쉬더니,
“그래, 어차피 열쇠는 고장 났어. 내가 내일 새 걸로 바꿀 거니까 오늘만 써.”
그렇게 허락을 받고 우리는 신나게 농기구를 빌려갔다.
하지만 또 사건이 터졌다.
나는 잡초 제거를 하다가 곡괭이 끝에 묵혀 있던 돌덩이를 ‘쾅’ 치는 바람에 곡괭이 머리가 날아갔다.
101호 아주머니는 꽃을 옮기다가 흙 속에서 굴러다니던 고무장화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개구리가 ‘껑충’ 뛰쳐나왔다. 놀란 아주머니는 삽을 놓치고, 삽은 옆집 담벼락을 ‘쿵’ 치더니 102호 아저씨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결국 세 명 다 흙범벅, 땀범벅, 웃음범벅이 됐다.
저녁 무렵, 창고에 농기구를 반납하러 갔더니 아저씨가 물었다.
“잘 썼어요?”
우린 서로 눈치를 보다가,
“…네. 다음에도 꼭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다음엔 보증금 받고 빌려줄게.”
그날 이후, 우리는 비밀번호가 뭔지 몰라도 창고를 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비밀은… 창고 문이 생각보다 잘 안 잠긴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