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종이 가져오는 날
《종이 가져오는 날》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제15화
“내일은 종이 가져오는 날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조용히 가방끈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신문지 있죠? 버리는 종이요. 종이!”
아빠는 마루 아래 있던
낡은 전단지며 종이 상자를 꺼내 주셨고
엄마는 오래된 달력과 다 쓴 공책을
조심스레 모아 주셨다.
나는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두 팔에 꼭 끌어안고 내일을 준비했다.
그때는 매주 혹은 격주,
요일을 정해 아이들이
종이와 헌책, 폐지를 학교로 가져오곤 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학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가르쳤고
우리는 그걸 곧잘 따라 했다.
종이를 못 가져온 날은
칠판 옆 “미제출자 명단”에
이름이 써지곤 했다.
나는 그게 무척 싫었다.
이름이 보인다는 것,
무언가를 못 했다는 표시 같아서
왠지 부끄럽고 속상했다.
그래서였을까.
학교로 향하는 아침이면
나는 두 팔 가득 종이를 껴안고
뒤뚱뒤뚱 걸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세상을 조금은 깨끗하게 만드는 데
나도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챙겼던 건
종이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성실함, 책임감,
그리고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까지
가슴 가득 안고
학교로 향했던 그 아침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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