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이름
9화
책임이라는 이름
그날 밤은 유난히 조용했다.
룸 다섯 개 중
두 개만 손님이 있었다.
성진은 카운터 의자에 기대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방 청소를 마치고
카운터 옆 의자에 앉았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노래방에서는
이런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성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님.”
“네.”
“그 여자랑 처음에는 그냥 가끔 봤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술자리에서 몇 번 보고
가끔 밥 먹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나는 물었다.
“왜요?”
성진이 잠깐 웃었다.
“독했습니다.”
“독해요?”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둘 키우는데
하나도 안 흔들리더라고요.”
성진이 말을 이어갔다.
“골프 캐디 일이 쉬운 일 아니거든요.”
나는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가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고
손님 비위도 맞춰야 하는 일.
“근데 그 여자는요…”
성진이 잠깐 말을 멈췄다.
“힘든 티를 안 냈습니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아이들 이야기만 했어요.”
그는 말했다.
“맨날 아이들 이야기.”
성진은 카운터 위에 손가락을 천천히 두드렸다.
“아들 학교 이야기
딸 학교 이야기.”
그는 웃었다.
“자기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
나는 물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어요?”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모님.”
“네.”
“저 그때 스물다섯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그분은?”
“여덟 살 많았습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성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근데 저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깐 웃었다.
“사실…
저보다 더 어른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진이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그 여자 집에 갔습니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들이 하나
딸이 하나.”
성진이 말했다.
“처음에는 저를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나는 웃었다.
“당연하죠.”
성진도 웃었다.
“네.”
그는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근데 아들은 금방 친해졌습니다.”
“딸은요?”
성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딸은 저를 싫어했습니다.”
나는 웃었다.
“왜요?”
“모르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싫어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성진이 다시 말했다.
“이모님.”
“네.”
“그때 처음 생각했습니다.”
나는 물었다.
“뭘요?”
성진이 천천히 말했다.
“이 사람들…
내가 지켜야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래서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성진이 말했다.
“스물다섯 살에요.”
나는 물었다.
“무섭지 않았어요?”
성진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무서웠습니다.”
그는 웃었다.
“근데…”
잠깐 말을 멈췄다.
“도망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카운터 위에
잠깐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그래서요?”
내가 물었다.
성진이 말했다.
“그때부터 돈 벌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요?”
성진이 웃었다.
“별거 다 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웨이터
핸드폰 가게
술집
이것저것.”
나는 조용히 들었다.
“돈 벌면요…”
그가 말했다.
“차비랑 담배값만 빼고
다 그 집에 줬습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왜요?”
성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은
노래방 카운터 위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때 룸 호출벨이 울렸다.
성진이 일어났다.
“이모님 2번 방 시간 연장해 주세요.”
나는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네. 한 시간 더요?”
“네.”
나는 연장 버튼을 눌렀다.
룸에서는 노랫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 남자가
아이 둘 있는 집에 들어가
돈을 벌어다 주며 살았다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이 선택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성진은 너무 담담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그저 지나온 길을
조용히 설명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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