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스케이트 타는 여자아이
〈스케이트 타는 여자아이〉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제37화
시골의 겨울은 길고 또 길었다.
얼음이 오기 전,
아빠는 앞마당 논과
길 건너 큰 논에 물을 가득 채워두셨다.
얼음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앞논은 작고 오목했고,
길 건너 논은 넓고 드넓은 은빛 들판 같았다.
겨울이 오기 전부터
아빠는 부지런히 썰매를 꺼내 고치셨고,
어느 해엔 새로 나무를 깎아
썰매를 직접 만들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외지에 공연을 다녀온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손에 뭔가를 들고 오셨다.
“미숙아, 선물 사 왔다.”
하고 내민 그것은 바로
반짝이는 쇠날 이 달린 스케이트였다.
새것 같진 않았지만
그 반짝임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보물이 되었다.
내 발엔 조금 컸지만
두툼한 양말을 겹겹이 신으면 딱 맞았다.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꽁꽁 언 논 위에서
스케이트 연습을 도와주셨다.
TV 속, 서울의 멋진 스케이트장,
화면 속에서 날듯이 움직이던
예쁜 언니들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꼭 그렇게 멋지게 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사실 운동을 잘 못했다.
달리기도, 줄넘기도, 체육시간마다
늘 마지막에 서 있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찧어도,
아무리 넘어져도 일어났다.
몸은 추워도,
마음은 그 겨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간절했던 시간.
그 겨울, 나는
논 위를 날던 여자아이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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