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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Oct 14. 2020

마이너리그

"오빠야~ 타자의 할푼리 그건 어떻게 계산되는 건데?"


야구를 보는 날은 어차피 다른 프로를 볼 수 없으니 시큰둥하게 보고 있다가 오빠에게 물었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뭐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야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서는 야구의 재미를 몰랐다. 고교야구까지 시청하던 아빠, 오빠와 함께 경상도에서 자랐다. 거실에 한 대 있는 TV에 야구를 하고 있을 때면 끝날 때를 예측하기 위해 몇 회인 지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갈매기' 노래를 가슴 벅차게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팔 할이 오빠의 설명과 야구를 보며 건네주던 이야기 덕분이었다.


할푼리는 타율을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까지 계산한 것으로 안타수를 타수로 나눈 수이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100타수 중에서 37개의 안타를 쳤다고 해보자.
37/100=0.37, 즉 3할 7푼으로 아주 잘 치는 선수이다.
30/100=0.30, 즉 3할이고 25/100=0.25, 즉 2할 5푼이다.


오빠는 그 날 계산법을 알려주며 대략 이런 식의 이야기를 덧붙인 것으로 기억한다.

"2할과 3할을 치는 선수 사이에 차이가 엄청 클 것 같아도 실제로 안타수로 봤을 때는 10번을 더 쳐내느냐 아니냐거든. 그런데 그 열 번이 상상도 못 할 연봉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거지"


그렇다. 나는 오빠의 설명을 듣기 전에 2할대 성적을 가진 선수와 3할대 성적을 가진 선수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느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보니 1군과 2군 또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도 내가 생각한 것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스포츠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나 체격적인 우위를 타고난 선수를 노력형 선수가 이길 수 없는 경우가 많음을 점점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배운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타의(?)에 의해 룰을 익히며 좋아하게 된 야구를 자의로 사랑하게 된 이유가 하나 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역전의 가능성이 그나마 크다는 매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전반전 3대 0인 상황이라면 후반전에 역전이 될 확률이 없진 않으나 참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야구는 홈런 한 방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나는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다가도 노력이 되었건, 다른 무엇이 되었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이민을 온 후 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나 '언어'라는 도구를 탑재하고 태어난 메이저리그 선수와 급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 말이다. 스포츠의 세계처럼 냉정히 성적으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므로 그 '언어'를 탑재한 사람과 나는 월급에서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간혹 그런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면 '그래도 한국에서는 나름 메이저리그에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다. 간호사로서 일 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노력하면 그래도 웬만한 것은 이루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메이저리그나 1군에 있는 선수들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듯 나도 내 마음 속 마이너리그로 떨어진 순간에 뜻밖에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더 떨어질 곳은 없다는 안도감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용기
메이저리그로의 승격이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유한한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
9회 말 2 아웃에 홈런 한 방 날릴 수 있는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
그 기대로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improving 해 나가는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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