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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Sep 26. 2021

종의 기원

정유정(2016)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인류의 2-3%가량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그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라 부른다는 ‘순수 악인’이다. 유진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가면서 마치 유진과 독대하는 중인 프로파일러가 된 느낌이었다. 문제는 범죄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라는 프로파일러(독자)는 유진이 이끄는 손에 휘둘리며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유진에게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라 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을 보며 유진은 보이지 않는 변호사가 되어 ‘나라면 이 부분의 색감을 좀 손볼 거야. 곧이곧대로 표현한다고 다 그림이 되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이 같이 주인공이 악인이라는 빨간불이 끊임없이 깜빡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진의 시각으로만 오롯이 따라가며 이 ‘순수 악인’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유진이 살인을 게임 즐기듯 저지른 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망각을 통해 죄책감마저 씻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이렇듯 포식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에도 자석의 양극이 끌리듯 주인공의 편에 서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과연 그 악인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가 내 가족이라도 나는 과연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글로써 읽는 이의 배부른 감상은 아닐까 경계했다. 그러나 유진의 어머니의 심적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글을 읽기 힘든 순간에도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치료 목적’이 ‘순수 악인’을 탄생시킨 소위 ‘종의 기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안에도 정도가 약할 뿐 악인의 면모가 있지 않는가.’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분노와 두려움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도 없어지지 않는 연민의 근원이 어디인지 수도 없이 자문했다. 나는 소위 ‘도덕적 기준’이 타인에 비해 높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은 나를 ‘FM 99.9 MHz’라는 별명으로 부르셨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나는 해야 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의 도덕성이 타고난 기질이든, 성장 배경 때문이든,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나 이런 나에게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꿈꿔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소리 나지 않는 총이 있다면 쏴 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죽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다. 후자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의 죽음을 매우 슬픈 듯 눈물지으며 연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을 갖는 나 자신에게 심한 죄책감이 들었으나 그런 꿈이라도 꾼 날에는 꿈속에서나마 잠시 가슴이 후련했다. 용기 내어 밝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밝힐 수 없도록 무언가가 나를 무겁게 내리 누고 있다. 그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어쩌면 도덕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작가는 우리 안에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기 위해 제삼자가 아닌 ‘나’로서 인간 본성의 ‘어두운 숲’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안의 ‘어두운 숲’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유진이라는 연쇄살인마에게 표현하기 힘든 양가감정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들추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속 ‘어두운 숲’이 본의 아니게 드러나면서 한편으로는 툭 하고 건드리면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은 진심 어린 위로 또한 받았다. 연민, 두려움, 슬픔, 고통스러움, 분노 등의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도 결국은 따뜻한 위로를 얻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 지워버렸다고 믿었던 죄책감이 나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진이라는 악인을 통해 느꼈던 연민은 어쩌면 나 스스로 나의 어두운 심연에 보내는 작지만 넘치는 위로였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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