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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30. 2021

안녕, 제주 바다

여행. 욕구 그리고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하여

제주에 가야겠다 결심하고,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광클을 통해 모든 것이 준비되었기에 뒤늦게 내가 새벽 6시 40분 비행기를 예매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한참 외모 단장에 공을 들일 때인 십 대 청소년 2명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도대체 새벽 몇 시에 일어나야, 무슨 방법으로 이동해야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까.

고등학생 1번, 중학생인 2번과 (이런 구성으로는 처음으로 해 보는 여행이다. 초등학생 동생들은 배제하고, 큰딸들과 엄마와 만의 여행) 함께하는 시간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수다 떨다, 내일 무엇을 입을까 서로 의견을 나누다 우린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다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거기에, 서로 상극이며 앙숙인 1번과 2번이 좋은 풍경이 있는 곳에서 조금은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그동안 동생들에게 치이고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길 강요받았던 아이들에게 선물이 되길 바랬다. 엄마와의 오롯한 시간도 아이들에게 선물이길... 말수가 별로 없고 평소에 나보다 더 감정을 눌러 담고 살고 있던 첫째 딸에게 유독 마음이 더 갔고 그것이 이번 여행의 주획의도이다.(둘째 딸이야 워낙 잘 표현하니까, 이 아이 덕분에 집안  조용할 일이 없었었고^^)

(세상 시크한 고등학생 큰딸. 넌 무슨 생각하고 있니?)

비행기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 풍경이 참 이쁘다.

김포에서 제주는 내 출근시간과 똑같은 딱 한 시간 거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벽부터 분주했던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며 눈 한번 붙였다 뜨니 제주 도착이다. '덜커덩~~ 덜컹'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 내 마음도 덜커덩 내려앉았다. 또 눈물이 고이는 건 뭐지. 이 좋고 아름다운 날에 말이다.


이번 여행만큼은, 내 처지. 두고 온 다른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겪어내고 살아내야 할 날들이 이러한 일상 들일 테니까.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내 손으로 키워낼 수 없는 어린 두 딸들에 대한 아련함을 늘 지니고 살아야 할 테니 오늘만큼은 잊자!




하얀색 렌터카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33도가 넘는 날씨였지만 더운 줄도 몰랐다.

제주 바다.. 한마디로 미. 쳤. 다. 아니, 색감 보정 기능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런 색감이 가능하단 말이냐. 하늘색 하늘, 흰색 구름, 검은색 돌, 연베이지 모래, 에메랄드 빛 바다..

어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네! 김녕 월정리 세화 종달로 이어지는 제주 해변을 따라 이동하면서 그동안의 속상한 나날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카페 공작소 앞 세화 해변>


<월정리 근처 해변.. 검은색 파란색 흰색의 매혹적 조화>


최대한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넷의 다둥이집이라 식당에 가서 6인이 4인분을 시키거나 '둘이  하나씩 먹어!' 할 때도 많았으니. 아이들이 어렸을 땐 양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커가니 일인당 1인분 씩 각 개인별 주어지지 않는 문제는 심리적 결핍과 상대적 궁핍함을 가져오기도 했었다. '이번 여행은, 너희를 온전한 1인으로 대해줄게! 우도 들어갈 때 티켓도 성인 비용 한 명분을 다 내잖아? 보트체험도 미취학 아니면 중고등학생도 성인 비용을 지불하지. 사회가 너희를 온전한 1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 엄마는 지갑 여는 걸 아끼지 않을 거다. 무조건 1인분씩 먹어. 체험하고 싶은 거 있음 동생에게 양보, 언니에게 양보하기 혹은 서로서로 기다려서 함께 쓰기 이런 거 없이 과감히 둘 다 해!! 이번 여행의 콘셉트이다!!.'


<튜브도 2개 빌려!>

<세명이니까 음식도 세 그릇 시켜! -공항 근처 유명하다는 자매국수 고기국수와 비빔국수>

<바보라면.. 하.. 이거 이거 정말 너~무 맛있어서 그릇까지 먹어치울 뻔했다>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내 몸에 닿는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욕구와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자연 속에 있는 걸 좋아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고, 어느 날은 훌쩍, 어느 곳으로 떠나는 무계획도 좋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맛집이라고 이름 난 곳을 굳이 찾아가  먹어보는 것.


다둥이 가족으로써 다른 집보다 훨씬 잦은 위기와 불안감 때문에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고 성실히 살아온 것이 그동안 우리 집안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머릿속에는 주판이나 계산기를 띄워놓고 늘 셈을 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살고 있을까?

가족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욕구는 얼마나 잘 파악하고 해소하며 살고 있었을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은, 그동안 내 욕구를 방치하고 배우자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너무 맞춰오면서 차곡차곡 누적된 것은 아닐까.


제주 플렉스를 실천하며 내 감정선과 그 밑바닥에 있는 욕구들을 들춰내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이것들을 잘 달래주고 채워주고 살아야지!



'지랄 총량의 법칙'

좋은 날들과 나쁜 날이 합쳐서 평균을 만들고,

삶을 현재 종단으로 보지 않고 횡단으로 놓고 봤을 때 오르래 내리락하는 그래프가 결국 평균을 만들지 않을까? 싱크홀로 빠진 것 같고 심해로 내려갔던 내 마음이 제주 덕분에 조금 상승했다. 지금 겪어내고 있는 인생의 지랄이, 총량의 법칙에 의해 공식적으로 딱 평균에 맞춰지길.. 아니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살아갈 힘이 나는, 살아볼 만하겠다 생각이 든 참 좋은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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